차분하고 진지하게 세모(歲暮)를 보내본들 별 볼일도 없기에, 이번에는 해가 바뀌는 날 조금 요란하게 새벽까지 국악인들의 소리 공연을 보면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춥다. 이 추위는 당분간 쉽게 가시지 않을 것만 같다. 아직 한겨울이건만 먼 봄을 벌써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해가 갈수록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심드렁한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들뜨고 부푼 풍경도 보기 어렵고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활기가 없다. 춥다는 거다.
새해가 되면, 대체로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소망을 품는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각오를 다짐한다. 소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는 취업을 하겠다는 소망이 있는가 하면 누구에게는 반드시 결혼하겠다는 소망이 있으며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는 병마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또는, 오랫동안 돈에 시달린 사람은 큰돈을 벌기를 소망할 것이다. 그러나, 주위로부터 새해의 덕담을 들어도 립서비스 정도로 들릴 뿐 진실감(?)은 없다.
소망이 있다는 것 조차도 사치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룰 수 없는 소망을 갖는 것 자체가 아직 현실을 잘 모르는 미숙한 사람인 것이며 비현실적이고 사치스러워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어쩌면 소망보다는 차라리 기적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드러내 놓고 말하기를 두려워 하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한 사람은 더욱 결혼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은 더욱 취직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아직도 집을 사지 못한 사람은 더욱 집을 사기가 어려워질 것이며 아직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더욱 빚을 갚기 어려워질 것이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자영업자는 더욱 자리 잡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거다.
대체로 우리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작금의 정치인들과 재벌과 명성이 있는 CEO 및 지도층들의 언행을 보고 우리들의 내일을 전망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의 정치인은 부정부패와 도적질과 제 새끼들의 앞자락 돌보기만으로 국민을 돌볼 겨를이 없으며 힘 빠졌거나 이미 땅속에 누운 오리지날 1세대 재벌의 후손인 2/ 3세 파워 재벌들은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투자보다는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사업에만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하다는 그 잘난 유명 CEO들/ 지도층 또한 2/ 3세 재벌들의 눈치보기와 상층부의 입맛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과 훗날의 변명 자료를 채우기에만 골몰하며 당장의 통일이 솔직히 대다수의 민초에게는 악몽이 될텐데도 ‘통일은 대박’이라는 권자와 부자들만의 논리를 주장하는 황당함도 보인다. 게다가, 북쪽에서는 민중을 깔아뭉개고 핵개발로 날을 지새고 있는데도 미국은 남한에 핵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이러한 여러가지 지경으로 대한민국의 민초가 정을 붙일 꿀물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프로야구와 로또와 낭자골프군단과 영화와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한 '조성진'이 이 거친 현실의 꿀물같은 존재이다. 희망이라니 소망이라니 하는 단어는 개가 물어가도 좋겠다고 보인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 이육사(1904 – 1944)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 무렵으로 기억되는 ‘광야’를 처음 외운 날, 내 마음속에는 천둥 벼락이 내려치고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 바로 한 해 전에 나의 우상이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광야’가 들려 준 충격은 더욱 절절했을 것이다. 그게 어디 나뿐이었겠나, 강팍한 현대사를 살아낸 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거칠게 두드렸을 것이다. 그 거친 두드림은, 박정희의 ‘유신’에 대한 철폐 운동의 기준이 되었으며 현실의 사회생활에서는 힘에 대한 저항 정신을 고양시켜 주었던 거다.
처음 ‘광야’를 암송하던 풋풋한 시절의 서정이 있는 영화 《박하사탕》속 ‘설경구’의 외침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 !!!”를 외치며 돌아가고 싶지만,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 거다. 글 읽기를 좋아하지만, 책읽기 또한 내 안에 있는 답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요 자극일 따름이지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정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무수히 틀리고 좌절하면서도 지속되는 도전의 시도, 살아있기 때문에 그 존재의 이유로써 나는 오늘도 소똥을 뭉치고 굴리면서 뒷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것이다, 그 노동의 땀방울이 주는 쾌락의 절정에서 나는 꿈꾼다. 언젠가 눈 나리고 매화향기 아득하니 가난한 노래를 목놓아 부르게 될 그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