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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Led Zepplin 2016. 5. 16. 20:10


 

  한국형 느와르의 베스트3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신세계》《달콤한 인생》《친구》를 꼽을 것 같다. 그 중에서 느와르의 묵직하고 씁쓸한 맛으로는 단연코 《신세계》와 《달콤한 인생》이다. 그 중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강사장(김영철 분)’이 부하인 ‘선우(이병헌 분)’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명령을 따르지 않아 죽이려고 하자, ‘선우’가 ‘강사장’에게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질문에 대하여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대답을 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신만의 훌륭한 캐릭터를 구축한 명배우 김영철의 멋진 목소리로 만들어 낸 영화의 한 장면인 명대사였으나 성대모사를 통하여 다양한 매체에서 패러디 되는 유행어로 거듭났다.

 

내가 영국을 처음 갔던 때는 1977년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체류하다 처음으로 영국의 런던엘 갔는데 청담동에서 영등포에 온 것처럼 조금은 지저분하며 덜 정리된 풍경이었다. 런던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쇼핑가의 상점들은 대부분 화려했지만 거리는 파리에 비해서 음습하고 어수선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게이빌리지인 소호와 피카딜리 스트리트 등을 구경했는데 파리에 비한다면 그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다. 프랑스에 비한다면 조금은 촌스러운 나라였지만, 영국에서 견학한 조선소는 대단히 넓었으며 웅장하다는 느낌까지 엄습하여 무척 감탄스러웠다. 영국은 60년대까지 막강한 조선강국이었다. 70년대에 일본과 한국에게 그 주도권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국으로부터 조선강국의 타이틀을 빼앗아 온 우리나라에는 대우조선/ 삼성조선/ 현대조선의 3대 메이저업체가 있었지만, 70~80년대에는 단연 대우조선이 최강이었다. 그 대우조선에서 한국 최초로 석유시추선 ‘두성호’가 제작되고 진수되었으며 기초 철판작업의 생산/ 품질관리에서 부터 완성 후의 시운전까지 그 전체 공정에 나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진수식의 날 김우중 회장의 안내로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석하여 대한민국 조선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한 시절 전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던 유럽과 영국을 밀어내고 일본과 자웅을 겨루게 된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최고의 선박들을 ‘마데 인 코리아’로 갈아치우면서 그야말로 의기양양 그 자체였다. 그 이후로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의 엄청난 발전을 바라보면서 영국은 울음을 삼키며 70년대에 부실덩어리가 된 조선업체들을 국영화하였으며 80년대에는 잘게 쪼개고 나누며 그 조각들을 더러는 연결시키면서 민영화의 길을 걸으면서 대영제국의 조선산업은 그 화려한 막을 내렸던 거다. 유럽 대륙의 조선업이 침몰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미소지으며 대영제국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고 성장하던 대한민국이 90년대와 2000년대에 고급 컨테이너선과 탱커선들을 수주하고 첨단의 기술로 제작할 때, 싸구려 철판으로 물에 뜨는 것 자체가 신기한 배들을 만들던 중국은 언감생심 우리의 기술을 따라올 성 부르지 않았는데 일본과 한국의 수주를 가로채고 기술을 개발/ 도적질(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입니다.)하여 야금야금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면서 조선업을 기간산업으로 성장시켰던 거다.

 

금년에도 세계에서 100척 이상 수주 물량이 있었지만, 중국이 그 물량을 모두 쓸어갔으며 최근 이란에서도 물량이 발생하였는데 중국이 자금력을 앞세워 공격적 영업을 하므로 우리나라는 경쟁력이 뒤지는 상황이라는 현실이다. 이러한 비상상황이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의 산업 생태계를 위협하는 중국의 덤핑 판매에 밀려 우리는 지금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는 구조조정이 화급한 상황이다. 이렇게 드세고 거친 풍랑이 밀려오고 있는 세계적 환경 하에서, 수조에 이르는 빚더미에 앉은 경영부실의 회장단이 자기들끼리 나눠 먹기식으로 엄청난 상여금을 타간다던지 재벌기업은 해외의 섬나라에 페이퍼컴퍼니를 꾸미고 삥땅 수십억을 챙기고 가족경영회사들끼리 물량 밀어주기 사업을 하고 있음이다.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산에서 나는 거친 숫돌이라도 내 옥을 다듬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는 거다. 우리가 영국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고 킥킥거리며 붕가붕가하고 있을 때 우리의 뒷덜미에서 싸늘한 미소와 함께 칼을 갈고 있는 또 다른 나라가 있었음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위정자와 경제지도자들이 무능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것도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것도 IMF가 터진 것 또한 모두 그와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는 거다. 중국에게 밀려나고 나서 “넌 우리에게 모욕감을 줬어!”하며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세밀한 대책과 확실하고 용의주도한 구조조정이 지금이라도 당장 수립되고 실행되어야만 한다. 더 이상 울지않는 새는 목을 베는 단호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현실이다. 위정자들과 경제계의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