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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

Led Zepplin 2018. 5. 29. 22:07


                                                            

                                                               (왕피천 계곡의 비경 '학소대')


   지난 한 해 이루어 놓은 것이 무어냐고 자탄을 늘어놓으면서 지인들과 소주잔을 비우던 12월이 엊그제 같건만 시간이 흘러 순서대로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전국에서 꽃 축제가 화사하더니 벌써 6월이 코앞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화살같이 달려간다.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백범 김구의 스승인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의 실천자인 유학자 능선(能善) 고석노(高錫魯)선생은 제자 백범에게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는 것이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기이하게 여길만한 재주가 아니다. 벼랑에 매달려 있을 때, 잡은 손을 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이다.” 싸나히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간담이 서늘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거다. 작금(昨今)은, 천하가 조변석개(朝變夕改)로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변화한다. 가히 난세(亂世)라 할만하지만 비록, 난세라 할지라도 호연지기를 잃지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울진’의 ‘왕피천(王避川)’으로 결심을 했다. 불교 철학 그리고 '헨리 D. 소로우'의 '월든(Walden)'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나는 애시당초 처음 수도권을 떠날 때, 지방 중소도시인 ‘군산’의 변두리 시골 지역에서 5년을 살아본 후에.. 정말로 자연 속에서의 삶을 원했던 것이 맞다면 지리산으로 들어갈 것이며,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라 판단되면 수도권으로 귀환하기로 했었다. 이제 5년(해만 떨어지면 완전 산속 별빛만의 숲이며, 낮이면 20분 이내에 다운타운 환락가로 진입할 수 있는 승과 속이 그리 별반 멀지않은 타협적인 지역)을 살아보니, 지리산으로 까지 들어가기는 좀 그렇지만 수도권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영판 싫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던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방송한 환경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경북 ‘울진’의 ‘왕피천’에 관한 환경과 자연에 대하여 소상히 보여주는 프로를 보고는 “바로, 저기다!”하는 생각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왔으며 순간 머릿속 깊이 입력되어 있던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내 영혼의 고향(?^^) ‘지리산’의 '칠선계곡'”은 ‘지지직~!’거리며 내 뇌리에서 지워져 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물론, ‘지리산’이 ‘왕피천’보다 못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자연적 이미지가 ‘지리산’보다는 ‘왕피천’에 더 닿아있었다는 거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군산’의 변두리 촌락에서 ‘울진’의 ‘왕피천’으로 그 먼 길을 나는 듯이 쏜살같이 달려갔던 거다.

 

이후(以後), 머지않은 날 나는 이삿짐을 꾸렸다. 그 이삿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녀석들은 여러 권의 책과 LP판을 포함한 디스크와 CD를 포함한 테이프 등이었다. 벽면의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못 착잡한 심정에 빠져들었다. 녀석들은 이 나이까정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준 고마운 친구들인 거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채 지향점을 잃고도 그저 명목만이 그럴듯한 사회인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도시인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단술 몇 방울과 술지게미에 취한 가식적인 삶에서 나에게 인문학적인 취향을 잃지 않도록 하여 주었으며 비정한 선창가와도 같은 현실에서 나의 정신세계에는 늘 푸른 쾌적한 휴양지였던 거다.

 

그렇게 오랜 시간 부족한 나를 지탱하여 주었으며, 빈약한 영혼인 나의 정신세계에 올리브유와 자양분을 듬뿍 부어넣어 주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음악과 책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내 이미 강을 건넜거늘.. 어찌 나룻배에 연연할 것인가?” 하는 말도 아니되는 돈키호테 찜 쩌 먹을 어처구니없는 과감함과 황당한 자만심으로 인하여 죄 없는 나의 오랜 벗인 책들은 대부분 당시 그 지역의 불교도서관에 기증되고야 말았으며 고딩때 부터 모아왔던 LP판부터 괜찮은 디스크들 또한 절친 선배님에게 거침없이 양도되어 졌다. 아니, 내가 아꼈던 책 100여권만이 겨우 나와 함께 ‘왕피천’ 인근인 ‘불영계곡’으로 떠났던 거다.

박정한 나는 절친들과의 결별에 따른 거창한 이별의식 따위조차도 없었으며, 소박하게 소줏잔을 펼쳐놓고 너갱이빠진 인간처럼 고개를 들어 멍히 서책의 제목들을 구구이 짬짬이 바라보았던 것이 내 결별식의 전부였다.

 

이백(李白)은 그의 시(詩)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인생의 서글픔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天地者萬物之逆旅(천지자만물지역려) 천지는 만물의 여인숙이요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백대지과객)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와 같다.

浮生若夢(부생약몽) 부평초 같은 우리 삶이 꿈과 같으니

爲歡幾何(위환기하) 그 사이에 기쁨을 누린다고 해도 그 얼마나 되겠는가.”

이 시(詩)는 이백(李白)선생이 꽃이 만발한 봄날 밤의 정원에서 인생의 유한(有限)함을 뼛속 깊이 깨달으면서 썼다는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로빈 윌리엄스 분)은 학생들에게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가 필요하지만, 삶의 목적은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이다.”라고 단언한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못난 나에게도 마지막 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공부하는 ‘천자문(千字文)’을 지은 ‘주흥사(周興嗣)’는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서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는데 밤새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혼신을 쏟았던지 밤새 백발이 되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불린다는 것이다. ‘주흥사’의 천자문은, 평생을 거친 풍파에 대한 인고의 세월을 살아내면서 평소에 갈고 닦은 솜씨가 마침내 빛을 발하여 어느 날 동양의 사고를 엮는 모든 서책중 최고의 기본교본인 ‘천자문(千字文)’으로 태어난 거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대단히 아름다운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인생을 결정하는 극적인 순간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다.”고 간파하였으며..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속편으로 쓴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도 “가능하다는 믿음만이 불가능을 이길 수 있어.”라 하였으매, 나 또한 혹시 아는가. 죽음 직전에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와 같은 멋진 단편소설 하나를 구워낼지도. 누가 그랬다. 꿈은 클수록 좋다고... 응? 뭐시라? 허. 허황된 꿈은 절대 금. 금물이라꼬?

 

** 필부가 심산유곡인 ‘왕피천’에서 축구도 볼 겸 저잣거리로 내려온 것은 2002년이다. 그토록 풍요로운 왕피천/ 불영계곡을 뒤로 내팽개치고 이미 15년 이상 비 맞은 강아지로 저잣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지만, ‘소나기’는커녕 ‘이슬비’의 비설거지도 못한 채 삼가 총총히 나이 들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