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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후에스 궁전의 추억

Led Zepplin 2018. 7. 21. 03:29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미국 못지않게 유럽대륙이 광활하고 웅혼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차를 렌트하여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휴게소라는 것이 우리나라처럼 온갖 만물을 파는 매점으로부터 여행자의 입맛을 맞춘 동서양을 막론한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식탁과 의자만 야외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것이 전부인 곳이 태반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도 괜찮은 나라인 셈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유럽의 스페인에는 대표적인 두 개의 궁전이 있다. 남쪽으로는 멀리 알함브로 궁전이 있으며 마드리드의 근교에는 아랑후에스 궁전이 바로 그 것이다. 스페인의 아랑후에스는 왕궁도시로써 수도 마드리드로부터 남쪽으로 대략 30키로 정도의 근거리에 있으며 한 시간 정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2세는 여름 궁전의 필요에 따라 장소선정을 심사숙고 끝에 마드리드 근교에 위치한 도시 아랑후에스를 선택하여 별궁을 지었다.

 

마드리드 주변 사방은 대부분 건조한 고원지대이지만, 아랑후에스는 숲이 우거지고 타호강이 아름답게 유유히 흐르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수도인 마드리드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흐르는 하라마강은 아랑후에스의 외곽에서 타호강과 합류한다.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아랑후에스는 도시 외곽의 교외지역에 두물머리 양수리를 두고 있으며 타호강은 그 발원지가 아랑후에스에서 그닥 멀지 않다. 별궁을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은 계속 흘러 흘러 내려서 포르투갈 리스본의 '4월 25일다리' 아래를 지나 마침내 대서양으로 스며든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설계되어 건축된 아랑후에스 별궁은 궁 자체로써 예술일 뿐만 아니라 그 궁 안에는 수집된 수많은 그림과 도자기와 시계들이 있으며 잘 가꾸어진 초목들에 둘러싸인 폭포/ 분수/ 정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궁 내부의 도자기들이 가득한 방과 궁 안의 벽면을 치장한 그림들을 바라보면 그 규모의 대단함과 수집된 작품들의 아름다움으로 황홀한 지경으로 빠져든다.

 

왕은 여름이면 이 별궁에서 사냥과 사랑을 즐겼다. 마음이 넉넉해진 왕은 유명한 집시들을 불러 들였으며 밤이면 흥청망청 왁자한 파티와 춤판이 벌어졌다. 아름답고도 화려한 이 별궁의 방 60여개에서 마다 연인들의 속삭임과 교성이 자지러졌다. 그러나, 그 시절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남녀들은 시간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들의 숨결은 수백 년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 묻혀 있다. 과거의 권세와 영화도 영광도 모두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1939년의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는 스페인의 작곡가 호이킨 로드리고(1901~1999)가 이 궁전을 찾았다. 모든 영광이 사라진 궁 안의 사위는 침묵했으며 분수 소리는 시원했고 공기는 청명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읽어 낸 작곡가 로드리고는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왕과 명문 귀족들의 숨결과 영혼을 비장하고도 쓸쓸한 선율로 담아냈는데, 집시들의 악기인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랑후에스 협주곡〉이 바로 그 것이다.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들을 때 눈을 감고 들어보면 누구라도 음악이 영혼속으로 깊이있게 들어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눈을 감고 음악에만 집중했을 때 생겨나는 이러한 감각적인 경험은 로드리고의 음악에서 더욱 생생하다. 그것은 아마도 어쩌면 로드리고가 앞을 못보는 상태에서 작곡한 음악이라서 더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랑후에스 협주곡>의 2악장 아다지오는 인간과 역사의 허무와 쓸쓸함을 애잔하도록 우아하고 슬프게 표현한 그 절정이다.

 

아랑후에스 궁전의 다른 이름은 아랑후에스 여름별궁이다. 여름에만 쓰는 궁전이라는 뜻이다. 궁전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데, Main이 따로 있고 assistance 또는 sub가 별도로 보조로 있다는 거다. 만약 우리도 그처럼 별채를 소유한다는 것처럼 별도로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여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도 풍요로워 질 것이고 그 안목은 보다 너그러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궁전을 뛰쳐나간 고타마 싯다르타를 생각하면 문득 부끄러워진다.

 

법정스님께서는 무소유를 말씀하셨는데 우리 중생은 소유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 이 또한 갈등이요 고민처인 것이다. 소유와 관련한 법구경의 말씀에도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차차로 쇠를 먹는다.”는 말도 소유를 경계하는 다른 표현인 거다. 그 잘난 아파트 하나를 소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평생동안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가. 궁 안의 수많은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장식품들을 바라보노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집중이 얼마나 유구한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로드리고가 작곡한 협주곡속에 녹아있는 인간의 열망도 시간과 함께 무상하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