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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서정(秋日抒情)

Led Zepplin 2018. 9. 27. 22:08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이미 오래 전의 영화 《일 포스티노》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정부의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의 작고 한적한 섬 마을에 망명해 옵니다. 네루다가 머물기 시작하자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의 편지로 인해 갑자기 많아진 우편물량을 감당 할 수 없게 된 우체국은 어부의 아들 마리오를 우체부로 고용합니다. 마리오는 네루다와 그의 시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신이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마을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마리오는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네루다의 도움 끝에 마리오는 사랑의 감정을 시로 만들어 베아트리체에게 바치고 그녀의 사랑을 얻게 됩니다. 네루다는 정부의 탄압이 잦아들자 칠레로 돌아가고 베아트리체와 결혼한 마리오는 계속 시를 씁니다. 노동자 집회에서 네루다에게 바치는 시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마리오. 마침내 “시인”이 됩니다. 네루다가 돌아왔을 때 마리오는 세상을 떠났으며 마리오의 시만이 네루다를 맞이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가 아니고 평범한 우체부 마리오입니다.

 

“전 사랑에 빠졌어요.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영화 《일 포스티노 : The Postman, 1994》의 주인공 마리오가 사랑에 빠진 후 저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찾아와 하는 대사입니다. 누구나에게 이런 사랑이 인생에 한번쯤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나머지 그 달콤한 고통이 치료되고 싶지 않다는 마리오의 사랑은 순수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통하여 자신의 작은 이익이거나 경제적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계산하는 현대인에게 마리오의 사랑은 철부지 같기도 하고 어리석어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순수한 사랑은 우리가 이미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오래 전의 아련한 첫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베아트리체를 만나 단테와 베아트리체처럼 순수한 사랑을 나누면서 또 다른 세계인 이웃 어부들의 착취당하는 삶에 눈을 뜨게 됩니다. 시인 네루다는 그에게 탄부들의 지옥 같은 삶에 관한 시집(모두의 노래)을 왜 썼는지에 대하여 설명도 합니다. 사회적 의식이 전무하였던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시를 통해 예술을 배우고, 네루다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에 대한 ‘의식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 열정적(?)이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붉게 화장하는 흙길 따라/ 달콤한 밀어(密語) 속삭이며/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그녀와/ 들녘 끝까지 사뿐사뿐 걷고 싶다.”는 시인 김기현의 추애(秋愛)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 가을에는, 가슴 한 쪽이 시리고 마음이 아플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설령 시리고 아플 그 지경까지는 아닐지라도 더 늦기 전에 초콜릿이나 사탕보다 그에게 느끼는 진실한 감정을 단 한 두 줄의 시(詩)라도 만들어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그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괴물덩어리 사람의 마음도 돌려놓지 않던가요. 행여 그녀가 아니 그 남자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사랑의 크기가 크던지 작던지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 가을의 축복 아닐는지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사랑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진행되는 지극한 사랑도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 시절 리비아는 국민소득이 일인당 1만 달러였으며, 인구는 삼백만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 나라 정부의 절대 과제 중 하나는 인구를 늘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多産을 권장하는 한편, 사막의 오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내기 위하여 석유로 벌어들인 돈다발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품질 좋은 양탄자와 성능 좋은 에어컨 시스템/ 안락한 침대 그리고 꼭지만 틀면 수돗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집에서 편안하게 살게 해줄 테니 제발 도시로 나오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사막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유목민의 상당수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더 깊은 사막 속으로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증으로 시달리는 것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인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직 그들만은 이글거리며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태양과 모래폭풍과 갈증뿐인 사막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숨어 지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락함과 쾌락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즐기며 살고 있을 때, 바위를 부숴낸 돌멩이조차도 타고 부서져서 모래로 변한 죽음의 땅인 그 사막 속으로 말입니다.

 

해가 뜨면 땅과 하늘 사이는 분홍색 열안개의 열탕과도 같은 도가니가 됩니다. 그러나, 일단 해가 지고나면 추위는 살인적입니다. 사막 속의 인간이 열사와 동사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살갗 피부뿐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막에서 그들은 무엇 때문에 갈증뿐인 이 고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가는 것일까요. 그 선택의 해답은 사막 속에 있습니다. 리비아에는 오래 전 조상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같은 지도가 있습니다. 그 지도에는, 사막의 땅속 깊은 곳으로 흐르는 푸른 물길이 그려져 있으며 그들은 이 길을 신(神)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사막의 오지(奧地)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만이 이 푸른 물길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한수는 그녀가 살코기를 집어 줄 때마다 입을 딱 벌려 받아먹기만 할 뿐, 자기도 그녀의 입에 그 고기를 먹여주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한수의 마음은 무디고 이기적이어서 온 방 안에 가득 찬 금빛을 보지 못했고, 가만히 있어도 그 침묵이 노래임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도 잘 익은 과육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가 자기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도 몰랐다.” ‘문자’라고.. 노처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한수라는 유부남을 지극히 사랑해서 딸까지 낳은 미혼모의 이야기를 그 자신 또한 소설가 김동리의 제자였다가 재혼하는 그의 나이 어린 아내가 되어 소설속의 문자처럼 힘겹게 결혼생활을 살았던 작가 서영은의 작품 1983년도 제7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소설 ‘먼 그대’속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스위스 사람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소설이 원작입니다. 제러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대단히 쫄깃한 영화이지만, 인생의 심연(深淵)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영화는 소설에 뒤쳐지지 않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주인공 그레고리우스 교수는 엉겹결에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뛰어오릅니다. 열차.. 내가 원해서 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으며 달리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 목적지조차 모릅니다. 이 여행이 여기쯤에서 끝나 주기를 간절히 바랄 때도 있었습니다. 아주 드물게, 추억할만한 아름다운 날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마침내 기차가 멈추게 될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여행길에 만난 가을이라는 계절과 함께 사랑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할만한 축복입니다. 이 짧은 여행길에서 만난 그대의 사랑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