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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전상서

Led Zepplin 2019. 2. 2. 01:10



아버지!

그간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새해가 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낼 모레가 곧 설입니다. 벌써부터 TV에서는 중계라도 하듯이 고속도로 상황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제가 어렸을 때는 설 명절이 다가오면 동네 이발소에 가서 머리도 깎아야 하고 목욕탕에도 가서 때를 밀고 와야만 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미리미리 다녀왔지만, 목욕탕에 가기를 싫어했던 저는 차일피일 미룬 끝에 설이 코앞에 닥쳐서야 목욕탕을 찾았던 이유로 수도꼭지 앞은 고사하고 욕조의 물을 퍼서 끼얹는 용도로 사용되던 물바가지 겸 세숫대야도 차지하지 못하여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날도 있었던 겁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아주 오래 전, 그 날도 설 명절을 앞두고 저희가 살던 종로2가 인사동의 탑골공원 맞은 편 예전 국일관 골목 어딘가에 있던 목욕탕엘 아버지께서 제 손목을 잡으시고 둘이 함께 목욕을 가서 코흘리개였던 제가 목욕탕의 열기로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아버지의 넓은 등을 조막손으로 열심히 밀어드리자 옆에 계신 연세 지긋하신 분께서 아들이냐고 물으셨으며 아버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면서 그러하다고 대답하시곤 그 분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시던 흐뭇한 표정의 아버지가 오늘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아버지!

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맞이한 여름방학, 저는 아버지의 고향인 충북의 괴산으로 동대문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태워져 털털거리는 시골길을 하루 종일 내달려 작은 아버지 집으로 탁송(?^^)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고도 짧고 아쉬운 천방지축 개구쟁이의 방학이 끝날 즈음에 아버지는 저를 데리러 오셨는데, 시골로 내려간 지 20여일 만에 따가운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려 눈만 반짝거리는 저를 부둥켜 안아주시곤 때구정물이 졸졸 흐르는 손목을 꼬옥 잡으시고 마을 어귀에서 작은 집의 마당에 들어설 때 까지 얼마나 손을 꽉 잡으셨던지 아파도 아프단 말도 못하고 뜨거운 손에 끌려갔던 아프고도 가슴 벅차도록 기뻤던 기억이 작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2003/ 창비)

 

아버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주검으로 아버지께서 고향 선산에 모셔지던 날, 묏자리의 구덩이를 파고 아버지의 관이 묏자리 속으로 하관되자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온 몸으로 울음 울며 구덩이 속으로 여러 번 뛰어들어 가족들을 놀라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친인척과 아버지의 친구분들을 더욱 슬픔에 젖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멘토였던 아버지를 상실했던 중학교 2학년의 저는 삶의 의욕과 중심을 잃고 오랫동안 절망과 분노에 빠져 방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의 끝에서 구원처럼 바다를 만났던 저는 그 바다에서 조차도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한 마리 늙은 노새처럼 시들어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지친 걸음 이제 여기와

홀로 쉬시는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 가네

펄럭이는 만장너머

따라오던 조객들도

먼 길 가던 만가 소리

이제 다시 생각할까

지금은 어디서

어둠만 내려올 뿐

아 석상 하나도 없는

다시 볼 수 없는 분

그 모습 기리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잔 부으러 나는 가네.”

 

              -----   정태춘/ ‘사망부가’ 3절

 

** 추신 : 아버지, 인적도 없이 차가운 바람만이 스쳐갈 뿐인 텅 빈 산에 홀로 모셔두고 그저 꽃 한 송이만 휙 던져둔 채 작은 비석조차도 올려드리지 못하는 불효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 이승에서 못 다하신 그 말씀 들으며 흐느끼는 두 손으로 잔 올려 드리러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뵈옵는 그 날까지 내내 편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