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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앓이

Led Zepplin 2019. 3. 4. 23:34



산신령께오서 물으셨다: “이 무더위가 네 것이냐?”

대구사람이 대답했다: “아니라예, 북태평양 것입니더.”

산신령께오서 다시 물으셨다. “이 맹추위가 네 것이냐?”

강원도사람이 대답했다: “아니래요. 그 것은 시베리아 것이래요.”

산신령께오서 또 물으셨다: “그럼, 이 태풍은 네 것이냐?”

완도사람이 대답했다: “아따, 그 것이 워치키 내 것이다요. 그 것은 남태평양 것이구만요.”

산신령이 지치지도 않고 또 물었다: “글타문, 이 미세먼지는 정녕 네 것이렸다?”

서울사람이 대답했다: "츠암 나, 그것은 당연히 중국 것이죠.”

산신령께오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착한 한국인들이구나~!! 느그덜이 모두 다 가지도록 하여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하는 탄식으로 시인 ‘이상화’는 봄을 노래했으며, 시인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라며 봄의 정경을 표현했다. 낭만적이었던 우리나라 전국의 봄은 요즘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느 새 공기청정기는 집집마다 생활필수품이 되었으며 가전메이커들의 치열한 경쟁상품이 되었다. 어린 시절 일년에 한 두어 번 독감대비용으로만 사용되던 마스크는 이제 가방 속에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웃인 중국과 친밀하게 잘 지내야 하는데.. 이래저래(?!) 미움만 쌓이는 것이 현실이다.

 

자욱한 미세먼지속을 안개처럼 헤매고 다니면서도, 봄소식보다 앞서서 ‘통도사’의 고매화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으로 마음이 들떠있는 요즘이다. 내가 간절하게 보고픈 꽃은 통도사의 매화가 아니라, ‘화엄사’의 ‘흑매’와 ‘백양사’의 ‘고불매’인 까닭이다. 글타문, 이 달 어느 주말에 달려가야 하느냐 날만 새면 그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는 거다. 업무 중에도, ‘흑매’와 ‘고불매’가 문득 떠오르면 설레임으로 가슴이 뛴다. 해마다 봄이 오면 먼 길을 달려가 올려다보건만 항상 새롭고 좋기만 하다.

 

“모임이 이루어지자, 우리는 이렇게 약속하였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인다.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인다.

가을이 되어 서늘해지면 연꽃을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한 번 모인다.

한 해가 저물 무렵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인다.”

 

우리 모두가 존경하옵는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친구들과 함께 만든 〈죽란시사첩〉이라고 이름을 꾸민 동인지의 머리말에 나오는 글이다. 봄이면 더욱 그리운 친애하는 선배님 친구 후배들이시여,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저의 집 근처에는 살구낭구도 복숭아낭구도 참외밭도 없는 지라 어치키 사시는지... 마음만은 항상 곁으로 달려가건만, 삶은 그닥 만만치 않더이다. 조만간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얼굴 보고 목소리 듣고 술 잔 부딪히러 가야만 하리.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독일의 소설가이지만,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카프카’는 작품을 통해 상호간의 소통과 이해가 단절된 인간의 고독과 실존의 허무, 현대 문명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표현한 실존주의 대표작가이며 훗날 ‘카뮈’와 ‘사르트르’에게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추앙 받기도 하였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으로 생전에는 알려지지 못했다. ‘카프카’는 몇 차례의 결혼과 이혼 끝에 유대인 여성 ‘도라 디만트’를 만나 그 녀의 사랑으로 삶의 용기를 얻었지만, 페결핵의 악화로 ‘도라’의 품안에서 눈을 감는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모든 작품을 폐기하라고 유언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출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실존주의자 ‘카프카’는 “한권의 책,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네.”라며 친구에게 편지글을 남겼다. 추운 겨울이 지났으니, 한 권의 귀한 책 못지않게 소중한 우리들의 마음에도 따스하고 포근하며 편안한 봄이 살포시 찾아오기를 진실로 기대한다. 그리하여, 이 봄의 아름다운 힘이 소통과 이해의 단절, 가난하고 어렵고 병든 사람들의 고독과 실존의 허무 더불어 얼어붙은 온갖 현실의 바다를 봄눈 녹듯이 녹이는 희망의 용광로가 되도록 ‘산신령’께오서도 도와주시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