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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나비’의 이야기

Led Zepplin 2019. 5. 20. 21:14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1730~1775) == 묘작도(猫雀圖)》


  나는 수도권 한 대학교의 넓은 교정에서 살아가던 고양이입니다. 우리 대학교의 교정은 숲이 넓고 풍성하며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 많고 공기 또한 맑으면서 따뜻한 햇살과 아늑한 잠자리도 흔하여 말 그대로 환경이 좋은 곳이라고 하면 맞는 말입니다. 고양이 따위가 우리 대학교라고 말씀드려 웃긴다고 보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우리라고 칭하는 이유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대부분 저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오빠 언니들과 저는 격의없이 먹을 것을 나누어 먹으며 저를 귀여워해 주려고 서로 노력하시기 때문에 더러는 귀찮을 때도 있으며 때로는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착한 심성의 고양이인 까닭으로 결코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사실 검은 고양이라기보다는 속칭 턱시도 고양이라고 하여 온 몸이 검은 색과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특히 목 아래 부분이 하얗다고 하여 턱시도라고 붙여진 3살짜리 냥이 입니다. 대학생 오빠 언니들은 내가 얼굴도 귀엽고 균형이 좋아서 예쁘지만 옷 색깔이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을 많이 합니다. 우리 엄마와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으며, 내가 대학생 오빠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사실 사람 손에 키워지다가 버려졌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따뜻하고 볕이 좋은 날 제가 교정을 유유히 산책하다 보면 오빠 언니들이 서로 안아보려고 쓰다듬어 보려하여 잔잔하던 나의 산책이 방해받기도 하지만, 그들의 관심과 사랑이 마냥 귀찮지만도 않은 것이죠. 왜냐하면, 그네들의 관심과 애정은 줄곧 나의 식생활로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살고 있는 대학교에는 저하고 돈독한 사이로 지내는 머리칼이 희끗한 중년의 관리실장 아저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봄 어느 날, 숲가의 양지바른 곳에서 편안하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던 나는 내 곁에 쪼그려 앉은 채 나와 눈이 마주친 아저씨를 보자마자 첫 눈에 나는 곧 그 아저씨와 내가 가족과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될 것임을 즉각적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저만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은, 그날 아저씨는 나를 쓰다듬으며 보듬어 안아들고 자신이 혼자 사용하는 사무실로 데려가서 물과 빵 그리고 소시지를 나누어 주었으며 창으로 햇살이 드는 사무용 보조탁자 위에 본인의 방석을 올려놓아 나의 자리를 즉석에서 마련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나에게 ‘나비’라는 아리따운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내가 사무실에 입주한 그 날, 아저씨의 사무실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옷장 위와 컴퓨터 그리고 책장 위 까지도 두루두루 둘러보고 난 다음에 간단한 요기를 마친 나는 아저씨가 사무실의 보조탁자 위에 마련해 주신 풍성한 방석 보료의 보금자리에서 편안하게 누워 늘어지게 한 숨을 자고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아저씨는 본인의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냐아옹~”하며 인사를 건네자 아저씨는 잘 잤느냐면서 나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나 또한 화답하는 마음으로 아저씨의 손등을 핧아주었습니다. 한 숨 늘어지게 자고 난 후라서 볼일을 보고픈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아저씨는 방 한 편에 있는 쪽창을 열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이후로, 그 쪽창은 나만의 출입문이 되었답니다.

 

밖에 나가 놀다가도 아저씨 사무실 창문의 창턱에 올라 “냐아옹~”거리면 아저씨는 창문을 열고 나를 반겨주셨습니다. 아저씨가 퇴근을 하시거나 휴일에 출근하지 않으시는 날은 정말 쓸쓸했으며 숲속에 있는 예전 나의 거처에서 외롭게 지내는 날도 있었지만, 잠들기 전에는 항상 아저씨를 내일 아침에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잠들곤 하였답니다. 아저씨의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아저씨가 즐기시는 커피 냄새를 맡으면서 낮게 코를 골며 이루는 나의 느긋한 낮잠은 숲에 있는 잠자리보다 훨씬 안전하며 편안하고 따뜻했습니다. 이런 저런 먹거리로 나를 즐겁게 하여주시던 아저씨는 언제인가 부터는 고양이를 위한 고급 사료를 사 오셔서 저를 더욱 기쁘게 하여 주셨답니다. 제가 아저씨의 보호아래 생활한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생 오빠 언니들은 저를 더욱 조심스럽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아저씨를 만난 이후로 저는 훨씬 활기차고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으며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길고양이 친구들도 저를 항상 부러워하였습니다.

 

아저씨와 함께 여러 종류의 고기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받았던 추억은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삶이란 반드시 즐거움만으로 점철되지 않는 것이라더니, 가끔 숲에서 마주치던 너구리 가족 중의 누군가와 만나 싸우다가 다치기라도 하여 피를 흘리고 들어오는 날은 아저씨는 깜짝 놀라서 약을 발라주시고 붕대를 감아주시곤 하였습니다. 제가 다치는 이유는, 너구리 녀석들의 먹거리를 제가 탐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나를 먹거리의 경쟁자로 오해하고 공격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가끔은 개에게도 공격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겪어보니 개들은 저처럼 나무 위를 오르지는 못하더라구요. 제가 아저씨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숲 가장자리에 위치한 경비초소 부근에 놓인 올무에 발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올무에 걸린 나를 발견한 평소 안면이 있는 경비 홍씨는 내 발에 걸린 올무를 풀더니 이동용 케이지 안으로 나를 옮겨 넣으면서 “고맙다 나비야, 우리 마누라가 관절염으로 오래 고생하고 있으니 네가 약이 되어 주어야겠구나.”하며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경비 홍씨가 운전하는 흔들리는 차량의 케이지 안에 웅크리고 엎드린 채 나는 숲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내 이름을 부르고 쫒아 다닐 아저씨를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그저 마냥 울었을 뿐입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