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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의 랩소디

Led Zepplin 2020. 5. 31. 02:42

(옛 군산세관)

“힘이 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동작인가.

목 잘리지 않으려고 털 뽑히지 않으려고

닭발들은 온 힘으로 버티다 닭 집 주인의 손을 할퀴며

닭장 더러운 나뭇바닥을 하얗게 긁으며.

바위처럼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손아귀 끝에서

그러나 허공은 닭발보다도 힘이 세다.

 

모든 움직임이 극도로 절제된 손으로

닭 집 주인은 탱탱하고 완강한 목숨을 누른다.

짧은 시간 속에 들어 있는 길고 느린 동작.

힘의 극치에서 힘껏 공기를 붙잡고 푸르르 떠는 다리.

팔뚝의 푸른 핏줄을 흔들며 퍼져나가는 은은한 울림.

 

흰 깃털들이 뽑혀져나간 붉은 피가 쏟아져나간

닭의 체온은 놀랍게도 따뜻하다.

아직도 삶을 움켜쥐고 있는 닭발 안에서

뻣뻣하게 굳어져 있는 공기 한줌.

떨어져나가는 목숨을 붙잡으려 근육으로 모였던 힘은

여전히 힘줄을 잡아당긴 채 정지해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동작인가.”

----- 김기택 / 닭

 

삶이란 본디 이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시(詩)가 주는 아픔과 슬픔이 생경스러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녹색의 5월은 철없이 아름답고 신비스럽습니다. 5월에는, 무엇보다 살아있음을 가슴 가득 뭉클하게 하는 생명(生命)이 신비로운 신록(新綠)이 있고 어디론가 문득 훌쩍 떠날 여행(旅行)이 있으며 5월의 햇살과 차창(車窓)을 스치는 감미로운 바람과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이 있지 아니한가요.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떨치고 있음에도 봄은 이렇게 우리들의 가슴을 마냥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싱어송 라이터(SingerSong Writer) ‘엘튼 존(Eiton John)’의 노래 '60Years On'의 가사. “내가 60살이 되면 누가 나를 교회에 데려다 줄까요. 내 곁을 지키던 늙은 개마져도 죽고 없다면 말입니다. 세뇨리타여, 기타를 연주해 줘요~!”라는 대목을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하면서도 그 나이가 나에게 닥치리라고는 절~대로 믿지 않았던 나는 우물쭈물 어느 새 ‘엘톤 존’이 노래하던 그 나이를 넘어서고야 말았습니다.

 

영국의 소설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1-1731)’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의 흑인 노예가 등장합니다. 유소년기를 통하여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이 오래된 소설에는.. 바다에서 표류중 무인도(?)에 도착하게 된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가 식인종들에게 희생될 처지에 빠진 섬의 원주민 청년을 구출한 뒤 자신의 종으로 부리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크루소’는 그 원주민 청년에게 문명(文明)을 가르쳐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식사하는 법/ 옷 입는 법/ 말하고 읽는 법과 주인님을 모시는 법 등 원주민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나름대로 훈육(訓育)합니다. 그리고 그 흑인을 구해온 날이 금요일임에 착안하여 이름을 ‘프라이데이’로 명명(命名)하죠.

 

‘프라이데이’란 그 원주민의 존재(存在)는, 작가 ‘대니얼 디포’를 비롯한 당시의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이 정복한 식민지인들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선명하게 표현했습니다. ‘크루소’에게 절대복종(絶對服從)해야만 하는 ‘대니엘 디포’의 ‘프라이데이’는 18세기 당시의 양인(洋人)들이 갖고 있는 식민주의 시대 그들의 편견을 정확하게 구현해 내고 있는 매개체 바로 그 것입니다.

 

현대의 샐러리맨들이 매달 맞아야하는 모르핀주사와 같은 월급 또는 월수입, 회사라 통칭되는 조직(組織)/ 집 그리고 가정이라는 굴레/ 이데올로기/ 자동차와 문명적이기(利器)들 그 모든 것들과 함께 굴러가는 삶 자체까지도 모조리 ‘대니얼 디포’로부터 주입된 자취(Vestiges)라고 봅니다. 삶의 주인이지 못한 불안(不安)과 보이지도 않는 뭔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초조함의 근원 역시 ‘프라이데이’의 망령, 어려서 부터 양인(洋人)들의 스타일로 일방적으로 주입당한 이 시대의 주역/ 우리들이 탈피해야 할 노예근성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영국의 역사가였던 ‘토마스 풀러’는 “당나귀가 여행을 떠날지라도 말이 되어 돌아올 리는 없다.”고 말했지만,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셈이다.”라고 했죠. 젊어서 부터의 역마살로 인하여 이미 여러 나라를 수없이 반복 떠돌고 쏘다닌 경험이 있는 저는 최근 십여년간 불어 닥친 세계적인 여행 붐에 따른 엄청난 인파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비행기피증으로 인하여 해외여행은 자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봄/ 가을이면 나도 모르게 어딘가의 목적지로 불쑥 떠나고픈 마음으로 두근거립니다.

 

그 일련의 일정으로는, 늦은 겨울부터 초봄까지는 우리나라에 아직 10여 그루 남아있는 300년 이상된 말라 비틀어졌지만 그 향과 자태가 설명하기 어려울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매화를 찾아다니는 남도의 탐매여행/ 봄이면 백제와 고대불교의 꿈과 추억과 역사가 서려있는 나지막한 야산이 주류를 이루는 충남 부여와 공주 그리고 서해안 일대의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비경으로의 배회/ 가을이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무너져 없어져 버린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회와 역사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키는 심산유곡에 버려진 폐사지의 추적 탐사/ 강원도의 오대산을 들렸다가 동해안 7번국도 주변과 경북 울진의 덕구온천 불영계곡과 왕피천 일대에서 노닐다가 내륙을 가로질러 돌아오곤 합니다.

 

“문명세계의 집 없는 인간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더 크고 멋진 집으로 이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문명은 주택을 개선시켰지만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을 그와 같은 정도로 개선시키지 못했다. 아마도 죽어야만 그 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물질의 주인이 아니라 물질이 우리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이 물질적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돈이다. 현대에는 신보다 돈이 더 숭배의 대상이 되고 더 고결한 것이 되어 버렸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지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지 말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사려 깊은 삶을 살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과연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을 때가 되어서 자신이 진정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곡하는 꼴이 되고 싶지 않았고..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이토록 소중한 일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간디’가 영적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 미국인 ‘Henry David Thoreau’. ‘간디’는 영국에서 태어나 변호사를 하다 자신의 조국 인디아의 참 모습을 보고 인디아의 영적 스승이 되었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 미국인 ‘소로우’였던 것이죠. ‘소로우’ 선생은 좀 더 진지하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월든 호숫가의 숲에서 2년 2개월 동안 소박한 오두막을 짓고 생활했습니다. 부끄럽다.. ‘소로우’ 선생과 불교공부에 심취하여 40대 중반의 어느 날 문득 도시(都市)를 떠난다면서, 숲에서 술만 마시고 흥타령만 부르며 버킷리스트 50줄만 지웠다 썼다를 반복만 하다가 6년을 허송하고 다시 저잣거리로 돌아온 나...

 

고딩 시절부터 기타를 쳤다고는 하지만 오랜 공백과 배움의 노력이 중단되었기에 남을 가르칠 만큼의 실력은 되지 못하며, 사진이나 컴퓨터 실력 또한 또래보다는 낫다고는 할 수 있겠으나 타인을 지도함은 어불성설이고, 내 손으로 숲속의 오두막과 정자와 창고를 짓고 살았다고는 하지만 건축을 말하기에는 전문단어조차도 무지하고 40여개국을 방랑하였다고는 할지라도 여행전문가 또한 마찬가지. 전공으로 살아온 기계공학/ 생산관리/ 품질경영으로 나머지 삶을 살아간다 함도 지겹기는 매한가지.

 

잠 안오는 밤의 구상에 지나지 않으나, 여럿이 더불어 함께 모여서 《함께 떠나는 영화촬영지》(숲으로 가기 전, 대학생들과 2년여간 동숭동 대학로의 카페 ‘민들레영토’에서 ‘영화 스터디 그룹’의 스터디 경험 있음)/ 《고매화 탐사》 《폐사지 순례》(말 되나?)/ 젊은 날 생맥주홀 DJ의 경험과 역마살의 경험을 접목시켜 《들으면서 다시 보는 영화음악 스쿨》...

 

내일로 가는 길이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영화 속에도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들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늦었다고는 하겠으나, 시간여행을 통하여 나이든 우리들의 나머지 미장센이 즐겁고 유쾌하면 좋겠다는 잠 안 오는 밤의 짧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