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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의 풍경

Led Zepplin 2020. 8. 9. 22:13

 

                         ‘양조위’ ‘장만옥’의 《화양연화/ 2000》

 

   기나 긴 장마가 연일 비를 뿌리는 밤입니다. 바이러스와 민주독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위선의 권자들만으로도 돌아가는 세상이 힘겹건만 국민들에겐 부동산파동과 천도설까지 떠안겨 나라가 혼돈의 와중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영위해 나가야만 합니다.

장마의 날들이지만, 밤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리는 비와 함께 사랑과 이별의 풍경을 보여주는 훌륭한 장면이 있는 영화들이 생각납니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OST, 스타 박중훈이 노래하는 ‘비와 당신’도 생각납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시는 밤이면 술 한 잔 걸치고 노래방을 가던 시절엔 저도 빠트리지 않고 부르던 로맨틱한 노래입니다.

 

내리는 비와 함께 하였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의 풍경이 있는 영화에는 빼놓지 않고 역시나 아름답고 멋진 음악들이 흐릅니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영화 《화양연화/ 2000》에는 보사노바풍의 재즈 ‘Quizas Quizas Quizas’가 흐르고 《메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에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벨리니’의 오페라 < 노르마 > 에 흐르던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이여'가 심금을 울립니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93)》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을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가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정상급 두 연기자 ‘안소니 홉킨스’ ‘엠마 톰슨’의 열연이 작품에 빠져들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 ‘가즈오 이시구로’가 호명됨으로써 시상식장에 놀라움을 전했던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입니다.

일본인의 이름을 갖고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국적은 영국입니다. 나이 어린 5살 무렵에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여 일본인으로의 정체성과 언어가 각인되기도 전에 영국인으로의 교육을 통하여 그의 모든 것을 성숙시킨 것입니다. 신체적 DNA는 일본인이지만 영국인의 심리적 정신적 정체성을 교육받아 숙성시켰으니 결국 영국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영화화한 소설 《남아있는 나날》이 전통적인 영국인의 생활상에서 나온 소설이라는 것이 어떻게 일본인의 이름으로 ‘부커상’을 수상했는가의 의문점이 풀릴 수 있습니다.

영화속에 흐르고 있는 우수는 남녀의 사랑을 애절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기실 이제는 쇠락하여 오래된 훈장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영국 그리고 영국인들의 전통과 예절 그들의 품격에 대한 아름다운 오마주입니다.

 

영국의 명문가 ‘달링턴’ 가문 대저택의 집사 ‘스티븐스(안소니 홉킨스)’는 집사장이라는 신분을 넘어서 달링턴가의 충복입니다. ‘달링턴’가가 최우선인 그는 하녀장 ‘캔튼(엠마 톰슨)’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캔튼’ 역시 그의 지극히 사무적인 외면속에 숨어있는 따뜻하고 진실한 내면에 호감을 갖고 ‘스티븐스’의 대쉬를 기다리지만, 서로는 애틋한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허망하게 헤어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서, 이제는 나이든 노년이 되어 재회한 왕년의 대저택 하녀장 ‘켄턴’은 역시 이제는 나이든 집사장 ‘스티븐스’에게 묻습니다. “하루중 저녁이 가장 좋은 시간이래요. 그래서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랍니다. 당신이 기다리는 건 뭔가요?”

‘켄턴’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비 내리는 그 밤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타고 눈물을 뿌리며 떠나는 ‘켄턴’을 집사장 ‘스티븐스’는 우산을 움켜쥔 손만을 움찔움찔거리며 20년 전 젊은 날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도 시도하지 못한 채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으로 그녀를 또 다시 떠나보내고야 맙니다.

 

사랑하면서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연인들의 영화에는 눈물처럼 비가 자주 내립니다.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게 된 남편과 부인을 둔 남녀, 여러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친밀해진 두 남녀. 그런 어느 날, ‘첸’부인은 ‘차우’에게 애인이 있느냐고 추궁합니다. “있다.”고 실토하는 ‘차우’와 울음을 터트리는 ‘첸’부인. 사실, ‘차우’의 실토는 처음으로 둘의 관계를 고백한 순간입니다. 기쁨 한 편 불륜에 대한 죄의식의 복합적인 미묘한 감정속에서 터져 나온 여인의 울음이며, 둘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겁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현실에 부딪혀 망설이는 그들의 마음.. 고백하지 못한 채 끝내 이별의 날은 다가오고.. 울리는 전화벨을 받지 못하는 여자.. 혼자말로 “함께 떠납시다.”고 말하는 남자. 남자가 떠난 후에야 서둘러 호텔을 찾아온 여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도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랑을 여자 스스로가 받아들일 때까지 ‘차우’가 좀 더 계속해서 자신을 설득하여 주기만을 간절히 원했던 유부녀 ‘첸’. 그러나, 소심한 사내는 그녀의 바램을 몰라주고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세월이 흘러도 가슴 깊은 곳에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사랑,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들의 사랑.. ‘양조위’ ‘장만옥’의 영화 《화양연화/ 2000》입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평생을 바꾼 단 4일 간의 사랑 이야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가 있습니다. 잡지의 표지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에 도착한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매디슨 카운티’에 사는 여인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낯설지만 서로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점점 가까워집니다. 사진을 찍고 난 후 떠나야 하는 ‘로버트’와 ‘매디슨 카운티’를 떠날 수 없는 ‘프란체스카’. 두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며 인생을 바꿀 가슴 뛰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결국, 두 남녀는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마트의 주차장에서 교차로의 차안에서 엄청난 격정의 갈등속에서 결국 평생의 단 한 번뿐인 사랑과 영영 이별하게 되고야 맙니다.

 

그 두 남녀의 말할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는 ‘로버트’가 ‘프란치스카’에게 남긴 편지에 절절하게 녹아있습니다.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이 편지가 당신 손에 제대로 들어가길 바라오. 언제 당신이 이걸 받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소. 내가 죽은후 언젠가가 될거요. 나는 이제 예순 다섯살이오. 그러니까 내가 당신 집 앞길에서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운 것이 13년 전의 바로 오늘이오. 이 소포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생활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으리라는데 도박을 걸고 있소.

 

나는 1965년에서 1975년까지 거의 길에서 살았소. 당신에게 전화하거나 당신을 찾아가고픈 유혹을 없애기 위해서였소. 깨어 있는 순간마다 느끼곤 하는 그 유혹을 없애려고 얻을 수 있는 모든 해외작업을 따냈소. “빌어먹을, 난 아이오와의 윈터셋으로 가겠어.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와야겠어.”라고 중얼거린 때가 여러 번 있었소. 하지만,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고 또 당신의 감정을 존중해요. 어쩌면 당신 말이 옳았는지도 모르겠소.

 

나는 마음에 먼지를 안은 채 살고 있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뿐이오. 당신 전에도 여자들이 몇 몇 있었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없었소. 의식적으로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오.

한번은 제 짝꿍을 사냥꾼의 총에 잃은 거위를 보았소. 당신도 아시다시피, 거위들은 평생토록 한 쌍으로 살잖소. 거위는 며칠 동안 호수를 맴돌았소. 내가 마지막으로 거위를 봤을 때는 갈대밭 사이에서 아직도 짝을 찾으며 헤엄치고 있었소. 문학적인 면에서 약간 적나라한 유추일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내 기분이랑 똑같은 것 같았소.

 

안개 내린 아침이나 해가 북서쪽으로 이울어지는 오후에는 당신이 인생에서 어디쯤 와 있을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려고 애쓴다오. 뭐, 복잡할 건 없지. 당신네 마당에 있거나 현관의 그네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부엌의 싱크대 옆에 서 있겠지. 그렇지 않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소. 당신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지 당신에게 얼마나 여름 같은 맛이 나는지도. 내 살에 닿는 당신의 살갗이며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이 속삭이는 소리.

 

신이라고 해도 좋고 우주 자체라고 해도 좋소. 그 무엇이든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위대한 구조하에서 지상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나흘이든 4억 광년이든 별 차이가 없을거요. 그 점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려고 애쓴다오. 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오. 그리고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을 끌어대도 매일 매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소. 자비심도 없이 시간이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리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오. -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 ”

 

“사랑했던 시절의 따스한 추억과 뜨거운 그리움은 신비한 사랑의 힘에 의하여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한다.”

----- 스페인의 작가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Cracian/ 1601-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