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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암에 오르다

Led Zepplin 2021. 2. 4. 08:21

   담력과 함께 문무 또한 겸비한 ‘문가학’은 섣달 그믐날을 기다려 한 말의 술을 짊어지고 ‘정취암’을 올랐다. 2경(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의 두 번째 시간/ 밤 9시~11시 무렵)이 지나고 3경(밤 11시~ 새벽 1시)이 깊어갈 무렵, 초연히 한 여인이 나타나 문밖을 기웃거렸다. ‘문가학’은 차분하고 담대하게 안으로 들어올 것을 청한 후에 여인이 자리에 앉자 술잔을 권했다. 술이 바닥날 즈음, 취한 여인이 비스듬히 기대어 조는 모습을 바라보니 허리 아래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였던 거다.

‘문가학’이 준비한 밧줄로 여우의 손과 발을 결박하자, 놀라 깨어난 여우는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리고, 여우는 자기에게 둔갑술 비결이 적힌 책이 있으니 살려만 주면 그 책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책을 먼저 확인한 후 사실과 다르지 않다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한 ‘문가학’은 비술이 기록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 두었을 때 슬그머니 결박을 푼 여우가 책을 낚아채어 달아났다.

‘문가학’은 기억을 더듬어 둔갑술을 부려보았으나, 둔갑이 온전치 않아 옷고름만은 감출 수 없었다. 그 후, 과거에 급제한 ‘문가학’은 벼슬을 하면서 둔갑술을 이용해 궁중의 거금을 빼내어 거사 자금으로 쓰다가 발각되어 역모죄로 참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거다.

 

‘통영대전고속도로’를 내달려 지리산 아래 ‘산청읍’을 동북향으로 둘러 지나며 ‘둔철산’ 기슭을 거슬러 올라서면서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올라서니 오래 전에 ‘정취암’ 바위굴에 살았다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에 대한 두려움이 떠오른다. 매년 섣달 그믐밤이면 사람을 홀려서 한 명씩 죽였다던 여우인데, 아직 날짜가 이르다고는 하나 지금은 오늘로 부터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음이다. 여우에 대한 두려움 그 때문인지 굽이굽이 오르는 산허리의 두려움인지 나도 모르게 똥꼬가 간질거린다.

‘정취암’에 머물던 스님들은 섣달 그믐날만 되면 인근 마을로 피신을 가야만 하였으며 보다 못한 ‘문가학’이라는 선비가 여우를 잡겠노라고 나섰다는 거다. 허지만, 그 시절 선비 ‘문가학’께선 안타깝게 놓치고 말았지만 이후 그 오랜 시간동안 누군가의 총포나 덫에 잡혔을 터이니 잡을 구미호도 이미 없거늘 나는 오늘 왜 ‘정취암’을 오르는가.

 

‘정취암(淨趣庵)’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의 전설 못지않게 그 이름마져도 아름다운 곳이다.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였다 전해지며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 유일의 사찰로 여우와 연관된 전설은 ‘문가학’이라는 실존인물 그리고 국가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공민왕’의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사실성 강한 설화로 전해 온다.

‘정취관음보살’은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 무이행(無異行)을 실천하는 보살이라 한다. 오로지 한 길 용맹 정진으로 ‘정취관음보살’의 광명은 고통 받는 이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장엄한 광명이다. 그리하여, 보살의 무이행은 극락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로 알려졌다.

절벽에 크고 작은 바위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축대를 만들고 각각의 건물을 지었으므로 멀찍이서 보면 아슬아슬할 지경으로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법당 마당에 들어서면 세상이 모두 내 품안의 것인 양 한 눈에 들어온다.

구례 오산의 유명한 ‘사성암’에 오르면 한 눈에 항아리 안에 든 것처럼 세상이 내려다보이며, 오대산의 ’구룡령‘ 정상을 오르면 거칠고 웅혼한 높은 산들이 열병하듯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정취암‘에 오르면 켜켜이 첩첩이 내 품안에 천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장관이다.

 

‘응진전’ 옆의 산죽 숲을 오르면, 저 멀리 탁 트인 전망의 바위 암벽을 만날 수 있다. 오래 전 부터 민초들이 쌓아 올렸을 돌탑과 이미 죽어 신선으로 남은 고사목 소나무 한 그루. 암벽의 그 바로 아래는 마치 독수리의 집과 같은 ‘정취암’이 있으며, 쭉 뻗어 길게 멀어지는 시선은 산 아래 이름 모를 마을로 까지 이어진다. 이윽고, 오래전부터 이곳을 일러 ‘소금강(小金剛)’이라 칭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겨울 추위를 잊고 겨울답지 않은 날씨의 따사로운 햇살아래 바람 소리와 ‘정취암’의 풍경 소리를 들으며 넋을 놓고 저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자니 세상살이의 온갖 시름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높은 산의 절경은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절경의 풍광은 옛 시절과 다름없으되, 고승대덕도 대담한 선비도 여우도 모두 떠나고 없음이다.

 

‘둔철산(屯鐵山)’은 산 전체에 철이 많이 들어 있음이 표현된 지명인 거다.

선인들의 지명에 대한 작명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산에 바위에 철이 많으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사람의 혈액에도 철분이 들어가 있는데, 철의 성분이 대량 함유된 바위산은 인체의 혈액에 전기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동양철학자 ‘조용헌’ 선생의 이론이다.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에너지가 충전되면, 컨디션이 좋아지며 의욕도 충만해지고 영적인 꿈을 꾸게 된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자신의 앞일은 본인이 꾸는 꿈에서 개꿈도 있지만 설령 본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대부분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미래의 앞날을 예시하는 선견지몽(先見之夢)은 철을 비롯한 금속 성분이 많이 함유된 산자락의 집이거나 명당터에서 꾸는 경우 그 적중률이 높다. 성경이냐 불경이냐를 막론하고 신비로운 꿈 이야기가 많지만, 불교의 고승대덕/ 서양 종교의 선지자들이 대단한 꿈을 꾸었던 장소는 평범한 거취가 아니라 지자기가 강하게 흐르는 금속 성분이 다량 함유된 암반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삼성 휴대폰이거나 애플 휴대폰이거나 통화의 기능에는 대단한 차이가 없다. 신앙 또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브랜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철의 성분으로 이루어진 ‘둔철산’의 ‘정취암’에서 하룻밤 묵을 기회가 되면, 무쟈게 속 시끄러운 오늘의 현실에서 인류가 진정한 평화를 이룰 날은 도대체 언제쯤 올 것인지 제발 꿈에서라도 만나보고만 싶다.

 

 

 

(정취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