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바람이 불고 별은 반짝인다

Led Zepplin 2021. 5. 28. 01:16

 

  명산동 어느 주점에선가

양푼으로 마시던 막걸리

그 양푼에 담긴 건

막걸리 아닌 눈물과 피

그 때 우리가 마신 막걸리

오늘 바라보니 상처에 뿌린 소금

 

양푼 가득 막걸리를 마셨으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젊음의 분노와 슬픔을 소주로 달랬던 70년대 그 격정의 시기에 청춘을 보낸 우리는 나름의 상처와 슬픔을 갖고 성장하였지만, 학창 시절의 슬픔과 분노 그 울분은 산업화의 주역 한 사람으로 현실을 투쟁으로 살아내는 와중에 더러는 치유되면서 더러는 그 상처에 오히려 소금을 뿌리면서 엮어왔다. 그리고, 살면서 갈망했던 세상의 바다에서 충분할 만큼 낚아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 오랜 삶의 현장에서 한계를 깨닫고 어느 날 나는 떠났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으나, 못다 이룬 욕망을 내려놓고 낚싯대를 챙겨 총총히 낚시터를 떠났던 거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철도원》은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에도 어린 외동딸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생 역을 지킨 사명감이 투철한 어느 노역장의 이야기이다. 소설 《철도원》에는 줄곧 눈이 내리고 있다. 혹은 문장 사이사이에서도 눈을 느낄 수 있다. 눈 내리는 겨울 시골 종착역 ‘호로마이’의 그 추위는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의 인생과도 흡사하다. 철도원 ‘오토’ 그의 인생 역정은 대체로 우리와 닮아있다. 눈이 내리면, 고개를 들고 눈송이를 쏟아내는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풍경은 젊은 날 쏘아 올린 화살을 추억하는 우리들의 심경을 대변한다.

 

‘아사다 지로’의 또 다른 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의 주인공 ‘다케와키 마사카즈’는 산업화 시대에 일밖에 모르고 달려온 이 시대의 우리와 매우 유사하다. 정년을 앞두고 대기업 계열사로 밀려난 예순다섯의 남자는 매사에 성실했으며, 매일 아침 같은 지하철의 같은 칸을 타고 회사로 향하였으며 밤늦게 들어와 기절하듯 잠들고 다시 눈 뜨면 직장으로 향한다. 퇴직하던 날, 송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내는 뇌출혈로 쓰러진다. 별다른 취미도 사치도 없이 오직 일만 하며 평생을 살아왔는데 말이다.

 

그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진다. 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의 주인공과 비슷한 장면으로 예전 나의 상사도 세상과 문득 결별했던 거다. 나를 포함한 후배 직원들로부터 부러움과 승진의 전형처럼 보이던 임원의 갑작스런 주검. 어느 날 문득 말이다. 과수원에서 일하다 그늘에 앉아 잠시 쉬는 것처럼 임종한 사내도 있으며 올해까지만 일하고 내년에는 시골에 가서 전원생활을 꿈꾸던 직장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사연도 드물지 않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는 예고편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거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가 밤의 여신 ‘닉스’와 낳은 딸에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3명의 여신이 있는데, 실을 잣는 ‘클로토’/ 실을 나누어주는 ‘라케시스’/ 실을 끊는 ‘아트로포스’가 그녀들이다. 이들 세 여신은 각각 사람의 수명과 운명 그리고 불행과 고통을 할당하고 집행하는 여신이다. ‘제우스’는 아버지로서 세 여신을 주도한다고는 하지만, 그녀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운명의 결정권은 세 여신에게 있으며 ‘제우스’조차도 그 운명의 집행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은 이들 세 여신이 결정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거다.

 

인도의 속담에는 “불나방은 제 몸이 타는 것도 모르고 불 속으로 날아든다. 또 물고기는 위험을 모르고 낚싯대 끝의 미끼를 문다. 그런데 우리 인간도 육체의 쾌락이 불행의 그물로 싸여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바닥없는 무분별의 늪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는 말이 있으며, '테네시 윌리엄스'는 전성기 작품 중 하나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돈으로도 생명은 다시 살 수 없는 법이야. 유럽의 재고 정리 세일이나 미국의 시장들, 아니 세상의 어떤 시장에서도 그것만은 안 팔지. 인생이 끝난 후에는, 돈으로도 다시 살 수 없는 거니까… ”라고 자탄한다. 욕망의 또 다른 부산물인 돈으로도 안되는 게 어디 생명뿐인가.

 

글타문, 인간은 욕망의 부산물 돈에 대하여 얼마의 돈을 가지면 충분하다고 느낄수 있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돈에 관하여 사람에게 만족할 수 있는 한계란 없다. ‘쇼펜하우어’는 “돈은 바닷물과도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에서는 부자에 대한 지혜의 핵심을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 그 하나는 진정한 부자라면 부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몫과 운명에 스스로 만족한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 즐긴다는 말속에는 자족(自足)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즉,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탈무드’조차도 부자란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으로 그 핵심키워드는 ‘즐김’과 ‘만족’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내 지갑에 든 것만으로 즐길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거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에는 다음과 같은 말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양이 똑같다면, 내게는 아직 행복의 시간이 남아있어야 해요.”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내 삶에 있어서는 그 양을 측정하고 싶지 않다. 불행과 행복 그 어느 한 쪽이 더 많이 남아있을지라도 그 남아있는 것은 나의 나머지 삶의 중요한 부분이므로 어떤 쪽이 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머지 인생을 즐기며 살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늘 밤에도 바람이 불고 별은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