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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를 보내며

Led Zepplin 2021. 12. 19. 23:22

(덕유산 정상에서 바라 본 남도)

 

  바닷가 떠내려 온 난파선 하나

아스라한 그리움마저 잃어버리고

그 난파선에 갇힌 늙은 낙타

날개 부러진 갈매기마냥

파닥거리다 목 놓아 울다

부딪는 파도에 그 설움도 모두 보내고

속 텅 빈 소라껍데기

목 쉰 바람 소리만 애절하다

 

마침내 도착했던 머나 먼 바다

고래를 잡을 것만 같아

고래가 왈칵 반겨줄 것만 같았던

난파선 된 무모한 도전의 파편 조각들

 

다시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이 저녁

퍼붓는 굵은 눈발 속으로

부러진 추억 속 상처 도져오니

깨진 거울 속 멍들고 타버린 붉은 얼굴

 

  지금 이 시간처럼 수백 번의 자정이 지나가고 이제 달랑 십여 차례의 자정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렇고 그랬던 한해는 이렇게 다시 저물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사연으로 가득한 장편소설처럼 한장 한장 시간의 백지를 메워갑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누구도 안내해주지 않는 방향과 길을 따라 흘러온 여행입니다.

 

이제 한 해 동안 살아 온 사연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페이지를 넘길 시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몇 번째 1년 365일의 삶을 거푸 퇴고 하는 중입니다. 바쁘게 때론 힘겹게 한해를 보내면서 채워진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또는 즐거웠던 사연들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페이지는 좀 더 의미 있으며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채워 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오늘따라 지금껏 살아온 시간의 분량보다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분량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쁨이든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누군가의 노래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고 그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즈음 그리워지는 시간들이 때로는 애잔하고 더러는 너무도 아쉽습니다.

 

재깍거리는 벽시계의 재촉 소리를 들으며 어두워진 창밖을 보면서 오래전 어느 페이지를 뒤적입니다. 이미 까무룩 잊혀진 기억이지만, 오래 전 우리들이 수없이 쏘아 올린 젊은 날의 그 화살들은 지금 어디쯤 날아가고 있을까요. 지금 내 앞 소주잔속에 그 화살이 빠진 것은 아닌지 내려다보니 눈물 한 방울 화살 되어 잔속으로 떨어져 뒹굴고 있음입니다. 우리들이 쏘아올린 그 빛나는 화살들은 분명코 과녁을 통과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젊은 날의 패기가 아직도 생생하건만 속절없이 오늘 하루도 이미 다시 자정을 지나 흘러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때로 마음이 권태롭고 헛헛하면 차를 달려 서산 용현리 산자락 바위벽에 있는 ‘마애여래삼존불’을 뵈러 다녔습니다.

신비롭게도.. 그 삼존불의 미소는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며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여집니다.

아침에 만나는 삼존불의 미소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이며 저녁에 만나는 미소는 은은하면서도 자애로운 미소입니다. 계절로 만나면,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미소라고 보입니다.

여러 번 다녀 본 저의 소견으로는, 가을해가 서산에 넘어갈 무렵의 잔잔한 미소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자비로운 미소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 또는 어느 대상을 좋아할 때를 팬이라고 부른다면 저는 그 ‘마애여래삼존불’의 팬을 넘어 덕후를 지나 성덕이라 불리어도 좋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작은 소규모 점포일지라도 누대를 거쳐서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에는 세계적인 행사의 두 주역으로 우리의 ‘정몽준’ 회장과 일본축구협회장인 ‘오까노 순이치로’ 회장이 있습니다.

‘정몽준’ 회장은 ‘오까노’ 회장의 초청으로, 일본의 거물인 그가 개인사무실인 본인의 개인사업체 점포가 있는 사무실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오까노’ 회장은 대를 이어서 가업으로 붕어빵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회장이 ‘오까노’ 회장의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사무실 벽면에는 커다랗게 사훈이 씌어져 걸려 있었는바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앙꼬》라고 말입니다.

 

"God is in the detail."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보바리 부인』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가 사용한 말이라는 겁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이 말은 우리말로는 ‘개미구멍으로 방죽도 무너진다.’가 비슷한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세부사항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으나, ‘근소한 차이’를 말하는 ‘한 끗 차이’는 일상 속에서 종종 ‘결정적인 한 방’으로도 통합니다.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세세하게 챙겼더라면 완성하거나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뒷심부족이거나 의지박약이거나 부주의/ 실수 또는 방심으로 놓친 고기 뒤돌아보니 안타깝습니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인 별 볼일 읎는 한심하기만 한 도긴개긴의 대통령 선거를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의 일과 평화가 신과 함께 할 것인지 악마와 함께 할 것 인지는 모두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되는 2022년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