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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간이역에서

Led Zepplin 2021. 12. 26. 23:31

  친구여, 눈이 오시는 날은 배낭을 챙겨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문득 떠나자.

더러는 바람이 불고 첫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어도 좋겠다.

그리고, 이름 없는 어느 간이역(簡易驛)에 내려 눈발을 헤치고 산골 마을을 찾아가 보자.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보다는 그 단풍이 모두 져버린 초겨울이 나는 더 좋다.

늦은 가을 초겨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망실(亡失)의 우수(憂愁)가 나는 더 좋다.

망실의 우수가 수놓인 산하(山河)를 목적지 없이 천천히 떠돌다 만나는 저녁 석양노을이 좋으며

산허리를 굽이돌아 만나게 되는 산골마을의 시골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도 좋다.

그런 풍경을 만나면, 문득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도 못내 자태 고운 꽃이 지고 난 자리

찬란한 지난 여름이 이토록 쓸쓸한 것은

소리쳐 불러 보고픈 다시는 못 만날 그대

 

여름 날 운동장에서 학우들과 공을 차다 돌아서 문득 만난 가을바람

그 바람결에 문득 느껴진, 바람이 지나고 나면 만나게 될 겨울의 첫눈

그 첫눈을 그려보는 내 눈 가득 방아재의 꽃다운 누나가 그리웁다.

 

만나지 못할 사랑을 그리워하며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겨울밤에는 반드시 눈이 온다.

기다리며 기다리다 짓무른 눈으로 잠든 밤

그 새벽에는 밤새 눈이 내렸다.

 

구름꽃 마냥 가벼운 하얀 꽃잎들이 나풀나풀 날아 내린다.

그 새하얀 꽃잎사이로 피어나는 그리운 얼굴

언젠가의 그날 당신은 기차 창 밖에서 손수건을 흔들며

뜨겁게 속삭이며 말했다.

당신을 잊지 못할꺼라고...

 

첫눈 내리는 날 명동에서 만나자 하던 약속

아직도 잊혀질 듯 잊히지 않는 눈꽃 같은 얼굴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 하나

그 첫눈 속으로 얼굴이 묻힌다.

 

살아 온 지나간 젊은 날들, 직장의 업무란 대체로 보람도 있었으며 의미도 있었으나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꿈/ 삶에 대한 후회와 번민 그리고 스트레스의 일상...

삶은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에 절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외로웠기에 더욱 고독했다.

인생은 톱밥난로처럼 작지만 따뜻한 온기도 있으며 외롭고 서러운 인생도 더러는 첫눈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오늘처럼 눈이 오시는 날, 우리 기쁘게 만나 차를 달려 시골 간이역에서 한 잔의 더운 커피를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