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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위한 꿈

Led Zepplin 2022. 2. 16. 05:48

(터키의 위스퀴다르 연안의 작은 섬에 세워진 메이든스 타워)

 오후 5시...

TV로 유튜브에서 지나간 우리 시대의 전설 그룹사운드 ‘Eagles’의 녹화 공연을 보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한가로운 시간입니다.

밖은 지난 세기 천년동안 우리를 괴롭힌 잘난 이웃 중국 덕분(?)으로 미세먼지가 자욱하여 마치 안개가 낀 것만 같은 착각 때문에 더욱 젖어드는 추억 돋는 시간입니다.

그 안개 속으로 'take it to the limit'/ 'lyin' eyes'가 흐릅니다. 그 시절의 그 날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추억을 음미하는 이 순간만은, 늙어 간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도 듭니다.

돌아보면, 70년대의 그 시절들은 비가 오고 안개로 뿌연 하늘로 춥고 신산했던 날이 더 많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삶도 이정표를 잃고 무기력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늦은 밤이면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을’ 이불속에서 들었으며, 방송 속의 그 음악들 때문에 더욱 잠 못 이루는 밤들이 허다했습니다.

문학과 하드 락 그리고 술만이 삶을 지탱하게 해 준 엄혹한 고통의 날들이었을 뿐입니다.

 

그 시절, 많은 소년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얀 교복 상의의 긴 머리 소녀를...

그녀를 생각하며 까맣게 지새웠던 그 밤들도 그리고 그 하얀 밤 내내 써 내렸던 편지들도.

그 시절의 늦은 밤, 헤어지기 아쉬워 그 녀 집 앞 골목에서 키스를 나누었던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요.

예전 그 어느 날이었던가, 복음교회 옆 담벼락 길 골목을 지나다가 소녀를 문득 만났습니다. 반가웠지만, 덤덤한 척 인사를 건넸습니다. 지나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소녀는 등하교마다 이 골목길을 지나다녔을 것이며 우리 집으로 나를 보려 오고 갈 때도 항상 수없이 이 골목길을 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5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남아있는 그 골목길을 다시 지나갈 때면 그 소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소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한 미안함도 함께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웠던 소녀의 따뜻한 사랑은 세월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시에는 몰랐던 그 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그립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내는 지나고 나서야 결국 후회합니다.

 

고래를 위한 꿈이 있었지만, 포경선은 정녕코 출항할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암울한 날들의 지루한 연속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들의 고래는, 킬리만자로처럼 웅장한 덩치도 아니었으며 만년설처럼 하얀 향유고래도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아담할 만큼의 크기였으며 더러 상처와 얼룩도 있었지만 우리들의 고래는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만족을 부르는 덩치이며 거창한 신화 속에서 현실로 호출해낸 위시리스트였을 따름입니다.

우리들은 신의 불꽃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까닭으로 신이 내린 형벌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아 먹힌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스스로 무리한 욕망의 집착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경멸합니다.

초저녁, ‘만향’에서 커피 한 잔으로 시간을 죽이며 ‘Elton John’ ‘Led Zepplin’ 그리고 ‘King Crimson’ ‘CCR’ 등을 듣고 있다가 마침내 타는 목마름으로 의자를 박차고 나온 거리는 뛰쳐나온 우리들의 목을 당장이라도 졸라맬 것만 같은 밤이 되어 있었으며,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막걸리 선술집으로 들어섰고 잔을 들면 그 잘난 유신과 까닭 모를 아픔/ 고통에 대하여 욕설을 퍼부어댔습니다.

우리가 술에 취하면 목 터지게 외쳤던 그 모든 함성들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작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이 시답잖은 알량한 자유민주주의와 물질적 여유가 바로 그 응답인가요.

왜 우리는 이렇게 나이 들어 있음에도 아직 이토록 타는 갈증에 허덕이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들의 노력이 열정이 부족한 것일는지 아니라면 우리의 욕망이 지나친 것인가요.

 

잠시 눈을 감으면

찬란했던 순간은 사라지고

모든 꿈들도 눈앞에서

바람 속 티끌처럼 흩어지네.

 

망망대해로 출항했던 포경선

고래를 만나지 못한 채 늙어갔으며

누구도 그 모습 보고 싶지 않지만

침몰만이 기다린다네.

 

청춘 다하여 쌓았던 황금 탑도 바람결에 삭아지고

고래의 꿈조차 영원할 수 없으리

집착 버리고 다시 떠나자

모든 것은 저 바람 속 먼지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