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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꿈

Led Zepplin 2022. 6. 3. 06:26

 

(부여 궁남지)

 

 밤새 비를 뿌린 탓인지 오전에 호숫가 길을 따라 걸으니 바람에 섞인 공기가 한결 싱그럽고 풋풋하다.

지난 깊은 밤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귀가한 사람은 으슬거리는 한기로 어깨가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밝은 아침의 햇살은 비바람의 영향으로 이처럼 5월의 봄날은 화창하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5월의 환희 속에는 지나간 시절 추억속의 아련함도 함께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잊혀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시간 속에 그 모든 사연들은 감추어져 있을 따름이다. 시간 속에 감추어진 그 사연들이 더러는 아픔이며 더러는 슬픔이며 혹여는 기쁨이다.

 

점심으로 냉면을 먹으러 갔다. 소문난 냉면집이므로 식사 시간보다 조금 일찍 식당에 들어섰음에도 날씨가 더워지는 이유로 손님들이 제법 많다.

기다려 나온 냉면그릇을 바쁘게 비우고 나자 조금 서운했다. 메뉴판의 가격은 1,000원이 올랐는데 냉면의 양은 종전보다 표시 날만큼 줄었다. 이런 집이 아니었는데 머뭇거리며 만두를 시키기에는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미리 주문을 할 걸 하는 후회가 따랐으나 주춤거리며 일어서서 계산을 치루고 쩝쩝거리며 식당을 나왔다. 밖은 한여름처럼 더웠다.

 

인간의 피조물로서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는 '보이저 1호'이다.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는 45년이 지난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로부터 약 240억km를 지나 성간 공간을 달리고 있다. 빛으로도 22시간이 걸리는 거리라는 거다.

'보이저 1호'에는 '골든 레코드' 형태로 인류의 다양한 정보가 실려 있다. 우주라는 바다에 던진 병 속의 편지 같은 이 메시지에는 인간의 언어로 된 인사말, 자연의 소리와 이미지, 다양한 문화권의 녹음과 영상이 담긴 앨범이다.

 

'보이저 1호'의 '골든 레코드'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개발을 주도한 '칼 세이건'은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음 앞에서도 저의 신념엔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소멸합니다. 저의 육체와 저의 영혼 모두 태어나기 전의 무로 돌아갑니다. 묘비에서 저를 기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문득 기억날 땐 하늘을 바라보세요."

 

지난 밤, 끄덕거리고 졸면서 바라보던 TV를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변해있었다.

'민주당'의 '김동연' 후보가 접전 끝에 '김은혜' '국민의 힘' 후보를 이겼다. 경제관료 출신인 '김동연'은 충북 음성 무극이라는 깡촌에서 농투산이의 자식으로 태어나 '덕수상고'를 졸업 은행원부터 출발 행정고시/ 입법고시 합격 후 고군분투 출세 길에 올라 기획재정부 2차관/ 국무조정실장/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내고 단기필마로 마침내 '경기도지사'를 일구어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판단된다.

 

한국사를 강의하는 '최태성'이 쓴 <역사의 쓸모>라는 책에는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라는 챕터에 있는 내용이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도리어 망쳐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그들의 꿈이 '명사'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했을 뿐,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이죠.”

 

《꿈은 명사가 아니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꿈은, 돈도 명예 또한 아니며 직업도 아니다. 돈/ 명예/ 직업은 모두 명사이다. 꿈은 환상/ 허상/ 추억 또한 아니다. 그 모두도 명사이다.

꿈은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활동 행동 삶 자체라고 본다. 우리들의 삶/ 생활 꿈은 그것이다.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나는 젊은 시절 직장에서 주어진 직책보다 뛰어난 실적을 내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확실하게 인정받으며 겪어낸 직장인으로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진급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나, 나는 돈을 잘 번다든지 큰 출세를 한다든지 글을 잘 써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럴 재능도 없고 자신도 없다.

 

그저 단순하게, 평범하나 나름 노력하며 길을 찾는 사람. 그러한 삶 속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절망과 우울/ 슬픔을 견뎌내며 때로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그 날 하루도 감사하며 잘 먹고 잘 지내는 생활인.

호연지기를 기른답시고 공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거친 호흡을 토하고 내 방 PC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자판 부서질 지경으로 스타2를 즐기는 그런 사람 ‘뛰어야 벼룩’인 소시민일 따름이다. 손톱 끝만한 고민으로 뒤척이다가 봄밤을 지새고 여명이 온다. 이렇듯 오늘도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