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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멈추지 않는다

Led Zepplin 2022. 7. 12. 03:45

 

 

  스폰지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어둠이 차분하게 내려앉으며 간간이 바람소리와 함께 후드득 거리며 내리던 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로 거친 바람과 함께 폭우로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세차게 창을 두드렸다. 한 밤 열두시를 넘긴 지금 장마 비는, 더러는 속삭이는 비단결 스치는 소리처럼 때로는 유리창을 열고 지난 시절에 당신이 함부로 내던진 거친 추억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따지듯이 세차게 내리치고 있다. 그렇게 추궁하는 빗발 속으로 초대하지 않은 지난 시절의 추억들이 저벅거리며 찾아든다.

 

지난 시절, 중학 2학년의 나이에 아버지의 주검으로 문득 만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머뭇거리며 구하기도 전에 연속적으로 이어진 진학과 학업/ 사회의 진출과 적응/ 해외로 떠도는 자에게 주어진 매력적인 외국 문물/ 문화와 금전이 주는 쾌락 그리고 승진의 성취감, 결혼 등의 세속적 욕망의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질주 속에서 그러한 일련의 질문들은 까마득히 잊혀져 갔다. 욕망의 그 뜨거운 트랙 라인 위에서 멈추지 못하는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면서 좌충우돌 살아왔던 거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하늘 가득 덮인 먹구름 때문으로 나는 늘 외롭고 고독했으며 사막에서의 신성한 노동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으며 해가 떠오르는 이른 새벽의 새벽강 그리고 누구랄 수 없는 그리운 그대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젖은 짚단 태우듯 소모적으로 영위할 따름이었다. 나는 고독할 때마다 문득 문득 사막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서 삶을 음미하며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헨리 D.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7.12~1862.5.6)’의 《월든(Walden)》을 떠올렸다. 서른 그 초반, 서울 강남의 제법 괜찮은 직장인임에도 스스로는 도시 사회인으로의 염증과 방황으로 절벽 위를 위태위태 걷고 있었을 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 지루한 사막에서 만난 파랑새와도 같은 ‘헨리 D.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비록 그와 같이 작은 통나무집을 손수 짓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자급자족은 엄두도 낼 수 없을지언정 외딴 숲속에서 조용히 멍을 때리고 책을 읽고 숲길을 걸으며 더러는 글을 쓰며 지나온 삶 동안의 온갖 방황과 좌절/ 내면의 슬픔/ 평화/ 아픔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긍정과 사랑의 마음으로 어리석었던 내 삶을 다시 한 번 더 반추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영혼의 안식처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소로우’의 서툰 학습자로써 사막에서의 고독을 견뎌내면서 나는 또 다른 한 명의 위대한 영혼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써 그 스스로 영혼의 오랜 싸움 끝에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2.18~1957.10.26)’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단순한 묘비명을 남겼으나 그 세 줄의 묘비명이 남긴 힘은 훌륭하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삶의 통찰을 보여준 ‘니코스 카잔차키스’로 말미암아 나는 스스로 못난 나의 자유를 반문하곤 한다.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7.26~1950.11.2)’가 남긴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유머러스하지만 함축적인 묘비명과는 달리 삶이 안겨 준 욕망과 두려움 그 모든 것들로 부터의 자유를 토로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로 부터 나의 욕망과 고통이 투영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칠 줄 모르는 두 영혼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를 오가며 살아 온 내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라는 화두는... 내게 남은 삶의 길에서 발에 채일 새로운 희망과 욕망을 소 닭 보듯이 바라보며 만나게 될 고난 또한 날마다의 일상처럼 당연하게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긴 트랙라인 위를 멈추지 못한 채 내달리는 쏜살같은 철마와 함께 했던 지친 낙타는 그 오랜 질주를 마치고, 고통과 기쁨 그리고 즐거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열사의 사막을 건너 언젠가 꿈에서 만났던 안개가 아름답고 우아하게 피어오르는 그 새벽강 강가의 그리운 집으로 마침내 돌아가야만 하리라.

그리움의 그 날 까지 낙타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