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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울음에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Led Zepplin 2022. 8. 10. 04:13

(스리랑카의 말레 등대)

 

  형과의 마찰로 인한 불편한 생활로 부터 헤어진 어머니의 나머지 삶은 그리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형과 함께 살면서 부대낀 살림살이의 끊임없는 노동과 구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작은 해방감은 있어 보였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은 아들과 만나는 짧은 외출이면 어머니는 여타 노인네들보다 맵시 있는 옷차림으로 발걸음이 가벼우셨다. 어머니는 나이에 비하여 식성도 좋으셨으며 안색도 밝고 맑으며 건강하셨다. 어머니와 작은 아들이자 막내와의 만남은 그렇게 두어 달에 한 번씩 이어져갔다.

 

어머니가 갑자기 다치셔서 전주의 성모병원으로 입원시켰다는 수녀님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내려가 만난 어머니는 “바쁜데 뭐 하러 내려왔느냐.”면서 우리 부부를 타박하셨지만, 내심으로는 좋아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건강하시던 병원에 입원하신 까닭은 심야에 어머니가 침상에서 낙상하여 엉치 부분의 뼈를 다치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상세한 검토 결과를 ‘고관절’의 골절상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머니의 연세가 많으셔서 완치는 어려우며 본래의 병보다 합병증이 더 우려스럽다며 의사는 비관적인 견해를 말했다.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병문안은 스트레스가 많아서 피곤한 업무를 마친 주말 아침 일찍 차를 끌고 한 달에 단 한 번을 오가는 것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안하던 짓을 하는 결과인지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게다가,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혼자는 병문안을 가지 않는 형을 설득하여 함께 간다는 일도 스트레스였다. 평생을 불효자로 살던 나이 육십이 넘은 자가 어느 날부터 갑작스레 효도 비슷한 흉내를 내려 하자니 그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러는 기차를 타고 왕복도 해 봤지만, 그 또한 피곤한 일이긴 마찬가지이다. 평생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보지 못한 자식이라서 효심이 없는 것일 따름인 거다.

 

어머니의 병환은 눈에 띄게 날로 악화되었다. 뵐 적마다 부쩍 나날이 수척해 지셨으며 간호사와 병실 담당 요양사의 전언에 의하면 어머니는 집에 가시겠다면서 신발을 찾으셔서 신발을 감추어두고 있다고 하였으며 치매의 조짐도 있다는 걱정끼 없는 말을 지나치듯 말하여 놀라게 만들었다. 서울의 집으로 돌아와 생활할 때는 어머니를 잊고 지내지만, 늙고 병든 어머니를 타관객지의 낯선 침대에 홀로 두고 떠나올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따랐다. 어머니를 뵙고 온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출근길까지 그 슬픔은 지속되었으나,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화요일부터는 까맣게 잊고 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간 어느 토요일, 어머니의 두 팔이 침상 양쪽 난간에 묶여있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는 무척 놀랐다. 병실 간호사를 찾아 다그치듯이 따졌으나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심야에도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나설 뿐만 아니라 상처 부위를 함부로 긁고 주사 바늘을 뽑는 통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것이었다. 음식을 드시는 것과 배설도 요양사가 직접 수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의사와의 면담을 통하여 어머니의 상태가 대단히 절망적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꽃보다 아름다운 17살의 나이와 남다른 미모에 홀린 나이 많은 사내의 물질적 사회적 꼬드김과 유혹에 넘어 간 늙고 무식하며 무척 건장하여 항상 무서웠던 아비의 강요로 결혼을 하여 6년 남짓을 살다 버려졌다. 우여곡절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평생을 부평초처럼 떠돌며 살다가 작은 아들의 인연으로 성당을 다녀 그나마 신앙을 갖고 말년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취미삼아 노년의 삶으로 알고 지냈지만 나이가 들어 본인 스스로의 몸을 거두는 것조차 힘겨워지자 개뿔 들어봐야 슬픔만 가득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살다가 갑자기 주검의 그림자를 맞이하게 되었던 거다.

 

어머니의 병세는 이제 자식의 입장에서 더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작은 아들이 담당의사에게 부탁하여 어머니께서 천주님의 곁으로 조용히 가실 수 있도록 협조하여 달라고 눈물로 하소연 하였으며, 인근 성당의 신부님에게도 부탁을 드려 종부성사를 받은 어머니는 작은 아들이 마지막으로 뵙고 온 며칠 후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나 귀천하셨다.

떠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꿈속에 나타나신 날, 어머니는 보랏빛이 나는 은은한 광채의 벨벳으로 지으신 한복을 고급스럽게 차려 입으시고 나타나 “성당에 헌금을 내려고 하니 돈을 좀 줘라.”고 여자 아이가 재롱부리듯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작은 아들은 모처럼 함께 활짝 웃다가 그 스스로의 웃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었던 거다.

 

어머니는 자신이 오랫동안 가방에 넣어 성당엘 다니고 흐릿한 눈으로 읽으며 보았던 낡은 성경책 한 권과 성경의 구절구절을 필경한 노트 한 권과 소박한 묵주 그리고 18금 금반지 하나를 유품으로 남겼으나 어머니의 관속에 작은 아들이 하늘나라에서 쓰시라며 어머니의 그 묵주를 넣어주었으며 작은 아들의 와이프에게 남기신 금반지를 어머니 천국 가시는 노잣돈으로 쓰시라며 관속에 넣어 보내드렸다.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를 어머니의 통장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형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무심하게 건네주고 말았다. 어머니는 본인의 평소 성품대로 그렇게 깔끔하게 조용히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던 거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낸 작은 아들은 두어 달 동안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본인만의 그 죄책감으로 오래 힘들어 하였다. 꿈을 꾸면, 사막의 어딘가를 끝도 없이 홀로 걸으면서 샘물을 만나지 못하여 갈증으로 허덕거리는 날들이 연속되었으며 문득 문득 낙타를 만나는 날도 있었는데 자주 만나는 그 낙타는 때때로 절규하듯이 하늘로 머리를 치켜들고 큰 울음소리를 냈다. 수억 년을 견뎌왔을 이 사막과 오랜 시간을 사막에서 이어져 왔을 낙타의 생명 그 낙타의 울음소리에서는 희한하게도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기적의 오아시스’라는 ‘명사산 월아천’은 사막을 아무리 헤매어도 도달할 수 없었으며, 꿈속에서도 낙타가 왜 만나기만 하면 우는 지도 궁금하였지만 그 울음소리 속에 들리는 파도 소리는 더욱 의문이었다.

 

건성으로 천주교를 신앙 삼고 있는 작은 아들은, 고통 받는 자들의 신음소리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무참한 현실에 절망하여 성경에 공감하지 않고 외면하였다. ‘수목장’으로 모신 어머니에게 참배하고 돌아오던 어느 날, 고속도로의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갔다가 차로 돌아오는 길에 동물원에서 운반 중인 듯 본인의 차 옆에 세워둔 대형 트럭에서 낙타를 보았다. 아니, 작은 아들이 낙타를 본 것이 아니라 낙타가 작은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그가 낙타를 바라보게 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가 낙타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낙타는 갑자기 길게 큰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에 고속도로 휴게소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그 낙타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낙타의 그 큰 울부짖음 속에서 분명하게 소리가 들렸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고 말이다. 그 순간, 어둠이 내리려는 휴게소 주차장은 짧은 정적에 휩싸였다. 잠시 후, 낙타가 실려 있던 트럭이 떠나고도 한참을 그 휴게소에서 떠나지 못했던 그 시간 8월의 뜨거운 여름 먼 하늘로는 노을이 아름답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