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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다

Led Zepplin 2022. 9. 7. 03:37

(크레타 섬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묘지)

 

  《페스트》와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가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상을 받았어야만 한다.”고 토로한 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으로 이야기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Den elpizo tipota).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Den forumai tipota). 나는 자유다(Eimai eleftheros).’라는 말처럼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단지, 남아있는 삶 동안이라도 말입니다.

 

학창시절 고독과 슬픔에 얹어 배까지 곯고 살았으며 학업을 끝내고 바다와 숱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과는 너무도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다를 떠나 육상에 살면서도 옳고 그름이 사람 주관마다 다르며 깃발 잡고 앞장서서 내달려도 진실 또한 호도되는 숱한 풍경들을 겪으면서 나이 들고 보니 차차로 세상과 삶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 헐리우드의 영화 ‘가을의 전설’을 보면서 ‘브래드 피트’가 엮어내는 인간의 아름다운 여정을 꿈꾸었던 지나온 나의 인생이 헛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고 젊은 직장인 시절 옳고 그름을 따지고 기업과 조직의 미래를 위하여 치열하게 논쟁했지만 나이 들어보니 그러한 싸움에서 이기고 진다는 것이 별 것도 아닌 것을 너무 몰두하며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평안하고 안일한 일상으로 이렇게 늙어가서는 안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조기 출근으로 아침마다 교내 야구장을 10바퀴씩 달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첫날은 두 바퀴를 돌았는데, 그야말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작심하고 달리기 시작하자 3 일차에 10 바퀴를 돌았으며 10여일이 경과하자 이어폰으로 하드락과 폭발적인 팝뮤직을 듣는 그 새벽은 괘감으로 변모하였던 거죠.

주말을 제외한 이른 아침마다 10 바퀴를 돌고 샤워를 마친 후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일과를 경쾌하게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운동에도 불구하고 3 개월 후에 대장암 4기 수술로 죽다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은퇴 이후, 이제 비로소 인생에서 가장 느긋하게 진정 평범한 필부로 살아가는 실로 귀한 시간이 돈과 일로 인하여 휘둘리고 싶지 않습니다. 쫒아 다닌다고 해서 손에 쥐어지지 않던 물질과 권력이 이 나이 들어 무슨 해당이 있겠습니까. 그것들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었다면, 벌써 내 손아귀에 쥐어졌을 것을 말입니다. 내 것이 아닌 그 열망들은 이제 모두 내려놓습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숲이나 호수를 바라보는 시간이 대단히 소중하며, 종일토록 숲과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시간도 행복하다는 생각이며 뷰가 좋은 훌륭한 장소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도 내일의 업무이거나 조직의 미래 따위를 구상할 필요조차도 없는 나만을 위한 진실한 자유 그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감하며 직장인으로 은퇴 이후 1년 8개월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은퇴 이후의 제2의 인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며 은퇴 후 인생을 더 주도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고 신명나게 기쁨을 맛보며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가야 한다며 어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추구하라며 채찍질을 합니다.

은퇴자 모두가 신명나게 미친 듯이 설치며 좋아 죽겠다고 해외로 여행으로 골프장으로 풀팬션으로 시니어학습원으로 바삐 돌아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뛰고 싶은 자는 뛰고 걷고 싶은 자는 걸어도 되는 것이며 서있고 싶은 자는 서있어도 되는 것이라고 본다는 거죠.

 

민들레에게는 민들레의 고운 삶이 있고 해바라기에게는 해바라기의 유쾌한 삶이 존재하고 들국화에게는 들국화의 아름다운 삶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해바라기가 되어야 하거나 누구나 민들레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죠.

사람들은 흔히 타인이 잘못 알고 있으면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는 둥 고지식하다는 둥 하며 질타를 합니다.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자각 또한 잘못된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나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정치인들이 착각하는 ‘내로남불’은 죄악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진실조차도 영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거죠.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멋진 구절이 있습니다. ‘위대한 예언자이거나 시인들은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보고 느낀다. 매일 아침 자신들 앞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을 본다. 새로운 세상이 안보이면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지식인이거나 종교인이거나 정치인들/ 언필칭 성공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야기에 현혹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창조했노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는 참고로써 충분한 정도이며, 자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스스로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에 집중하면 되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던 한 힌두교도가 큰 폭포 쪽으로 그 배를 밀어내는 물살을 거스르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웠다. 그 위대한 투사는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자, 노를 걸쳐 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내 인생이 이 노래처럼 되게 하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보헤미아’에서 프랑스어로 썼다는 ‘카잔차키스’의 소설 《토다 라바》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카잔차키스’는 힌두교의 우화를 인용했으며, 우화의 정신은 당연히 경전인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으로부터 왔을 것이며 힌두교가 인도의 토착 종교이므로 ‘싯달타’ 왕자도 부처가 되기 전에 이미 익히 들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운명’이라 불리우는 요술은 드물게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줍니다. 학창시절 우리는 ‘쌈치기’ ‘짤짤이’를 할 적에 잡은 손의 주먹에 너무 힘을 주면 대개는 돈을 토하게 됩니다. 가볍게 힘들이지 말고 잡아야 먹을 확률이 높거든요. 마찬가지로, 사격술을 배웠던 교련시간에 교관으로부터 “어깨에서 힘을 빼라.”는 말을 귀 따갑게 들었습니다. ‘장타’가 아니라, ‘오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톨스토이’가 한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그렇죠. 어제 사놓지 못한 땅과 아파트/ 어제 잘 못 찍은 주식/ 어제 잘 못 선택한 직장 따위는 다시 생각하지 맙시다. 내일 일어날 일도 미리 염려하지 맙시다. 어제 사놓지 못하여 안타까운 아파트보다는, 오늘 점심에 먹을 짜장면이 더 중요합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일 뿐입니다.

또한, 물질적으로 조금은 부족한 삶을 살더라도 이미 지나갔기에 후회해도 부질없는 욕망은 내팽개치고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조용히 추구하는 조금은 멍청한 삶을 사는 것도 좋겠다는 판단입니다.

 

살면서 간절한 욕망이 생긴다면 지겨워 질릴 때까지 흔쾌하게 즐긴 후에 냅다 집어 던집시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로부터 후회 없이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금파리에는 아무리 화려한 치장을 하여도 진검을 이겨낼 수 없으며 가오리는 몇 년을 독아지에 넣어둬도 홍어 맛을 낼 수는 없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즐겁게 삶을 보내고 있지 않다면 삶은 그저 허무맹랑한 일장춘몽일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은파호수’로 트래킹을 나갑니다.

나는 해탈도 바라지 않는 방랑자,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