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가을의 풍경

Led Zepplin 2022. 9. 29. 23:09

( 선운사의 꽃무릇)

  두어 번의 태풍이 지나가더니 문득 가을이 왔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제법 선선합니다. 모질던 무더위와 바람도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습니다. 지나고 나면 이렇듯 별 것이 아닌 것들을...

모든 물질들에 대한 욕망/ 출세 그리고 삶의 전부일 것만 같았던 사랑 또한 세월의 바람결에 허무할 만큼 가벼이 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드높은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한가로운 오전 나절, FM에서는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3번’이 조용히 흐르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먼 풍경에 눈을 주고 있습니다.

더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 눈앞에 다만 풍경이 있을 뿐이며, 귀로는 편안한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을 따름입니다. 지금 저에게 어떤 희망과 욕망과 꿈이 더 필요할까요.

지금 나는 평화롭고 자유롭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이 가을에는 '일 포스티노'이거나 '대부' 시리즈이거나 '8월의 크리스마스'/ '박하사탕'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젊은 날 욕망에 휩싸여 내가 쏜 화살을 찾겠다며 끊임없이 도시를 배회하던 지난 날 우리들의 풍경을 곱씹어 보고픈 생각에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그 풍경 속에서 이젠 이름조차 잊혀진 오래 전의 그녀를 만날 수도 있겠으며, 성당 계단에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안주 없는 소주를 마시던 옛 친구를 만나도 좋겠습니다.

사랑한 것은 잠시였으며 잊는 건 한참이었던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꽃무릇 같았던 눈물 아롱아롱한 우리 젊은 날의 가을이여.....

 

해당화 되어

바람결에 흩날리던 때 있었다네.

구름처럼 스쳐 지나 간 그대

내 그리움에 눈길조차 없었더이다.

 

다시 한 생애 말 달려 선운사 구경하던 날

꽃 피면 잎이 지고

잎 지면 꽃이 피듯

꽃과 잎 또 만나지 못했네.

 

그리고 다시 만난 삶에서

사랑한다 말하고

일 년 뒤 스페인에서 돌아오니

그대 방엔 눈물만 남았습니다.

텅 빈 밤 신작로에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    꽃무릇 사랑(202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