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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추억

Led Zepplin 2022. 10. 5. 02:21

 
  기도시간에 목사님께서 교회 안에 가득 앉은 교인들을 향하여 “예수께오서 누구 때문에 돌아가신 것입니까?”하고 신도들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마누라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저.. 때문에 돌아 가셨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던 거다.
예배가 끝나고 회당을 나오다가 목사님과 술주정뱅이가 마주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목사님은 주정뱅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나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정뱅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제 마누라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남자가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노숙자 한 명이 말을 걸었던 거다.
“아자씨, 밥 사먹게 만원만 주세요.” 남자는 밥을 굶었구나 하는 생각에 지갑을 만지며 노숙자에게 물었다.
“내가 돈을 주면 이 돈으로 술을 마시는 거 아닙니까?”
노숙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술 끊은 지 10년도 넘었는걸요.”
“그럼, 이 돈으로 다른 데 가서 혹시 도박을 할 건 아니죠?”
노숙자가 대답했다. “에헤이 참~ , 도박이라니요. 밥도 못 먹는데 무신 도박이랍니까.”
다시 남자가 물었다. “그렇죠.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술 여러 병을 사서 여기 동료들과 술판을 벌릴 일은 더더구나 없겠죠?”
노숙자가 말했다. “그럼요, 룸싸롱 가서 사람들과 술 마셔 본지도 여러 해가 지났거든요.”
남자가 활짝 웃으면서 노숙자에게 말했다. “형씨, 그럼 일어나시오. 우리 집에 가서 울 마누라가 차려주는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합시다.”
노숙자는 깜짝 놀라며, “아니.. 글타문, 선생의 어부인께오서 ‘이 인가이 미칬나?’하지 않을까요?”
남자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설명을 했다. “하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나는 마누라에게 남자가 술과 도박을 끊으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똑똑히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마신 기억은, ‘국민학교’ 3학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당시 우리 집은 종로 인사동에 아담한 테라스가 있는 오래된 한일 복합 양식의 2층 집으로 우리 가족 이외에 여러 명의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었으며, 대개는 아버지의 친구 후배 선배 등의 사람들로 집은 지방인데 서울에 볼 일이 있거나 때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렸으며 자고 가고는 하였다.
 
아버지의 본향인 충북 괴산 지인들의 부탁으로 시골에서 상경하고 아버지가 취직시켜 직장생활을 하며 우리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2명의 누나들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누나들은 나를 자기들 방으로 불러 같이 놀고 내 공부도 돌봐주곤 하다가 밤이 깊으면 내 방으로 가려는 나를 누나들 방에서 같이 자자고 나를 꼬드겼으며 나 또한 혼자 자는 것보다는 누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자는 것이 덜 심심하니까 못 이기는 체 누나들과 같이 자곤 했다.
그런데, 한 누나는 나를 부드럽게 안고 포근하게 재워줬던 반면 다른 누나는 나를 자기 사타구니에 꼬옥 끼운 채 너무 끌안고 자는 바람에 내가 좀 신경이 쓰이고 답답했던 기억이 있으나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살고 있는 누나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여 내가 참고 자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곤 하였던 거다.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누나들과 나는 함께 파티를 한답시고 같이 노래하고 손뼉을 치며 과자를 먹고 놀았는데, 나는 누나들 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루돌프 사슴코’에서부터 ‘예수 오셨네’서껀 ‘징글벨’까정 누나들과 교대로 아는 노래는 모두 불렀다.
즐거움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놀이에 흥이 오르자 한 누나가 슬그머니 병을 꺼내왔는데, 직감적으로 나는 그것이 술임을 눈치챘다. 내가 짐짓 모르는 체를 했더니, 누나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셨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누나들은 그것이 미국 과일쥬스라면서 나도 한 번 마셔보라고 권했다. 나는 여지껏 참았으므로 당장 응하기가 쑥스러워 살풋 쪼를 빼고 두어 번 사양했지만, 속으로는 한 번만 더 마셔보라고 권하면 마시겠다고 맘먹었다. 마침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누나가 맛있다며 마셔보라고 다시 권했다.
나는 못이기는 체 잔을 받고 노랗게 맑은 빛을 내는 그 단물을 홀짝 마셨다. 샴페인은 의외로 달고 맛이 끝~내줬다.
 
그 날 밤 우리 일당은, 샴페인 서너 병을 아작내고 취흥이 도도하여 방문에 두꺼운 담요을 두어 장 둘러치고 여러 곡을 합창하다가 마침내 잠이 들었다.
예수님께오서 축복을 내려주시러 직접 오신 다음날 아침, 축복은 고사하고 나는 아버지에게 직사하게 혼이 날 뻔하였으나 평소에 나와 절친했던 우리 집에 기숙하는 아저씨들의 만류와 두 누나의 간곡한 사죄로 인하여 그 추운 겨울 아침마다 한 달간 화장실 청소를 죄 값으로 치루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내 인생에 있어서의 음주가무 추태는 예수님의 생일날 그렇게 요란하게 출발했던 거다.
 
신화(神話)속에서 ‘그리스’의 주신(酒神)은 ‘디오니소스’이며 ‘로마’의 신은 ‘바커스’다. 이들이 포도주의 신인데 비하여 ‘이집트’의 ‘오시리스’는 맥주를 빚은 신으로 ‘피라미드’ 속에 그 기록이 전해진다. 또, ‘구약성서’에 따르면 홍수를 피해 ‘아라랏 산’에 오른 ‘노아’는 하나님으로 부터 포도주의 양조법을 배웠다는 거다.
‘로마’의 속담에도 "첫 잔은 갈증을 풀기 위해, 둘째 잔은 영양을 위해,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해, 넷째 잔은 광란을 위해 마신다"고...
‘독일’ 속담엔 "물고기는 세번 헤엄을 친다. 물 속에서 기름 속에서 그리고 술 속에서."라고.
‘물 속에서’란 살았을 때를 말하며, ‘기름 속에서’는 안주로 튀겨지는 상태를 말하고, ‘술 속에서’란 맥주와 함께 뱃속에서의 상태를 뜻한다는 거다.
‘프랑스’ 버전은 "물고기는 세 번 헤엄친다, 물속에서 소스에서 배 속에서 포도주와 함께."
 
아주 오래전, 술에 만취한 두 사내가 버스를 탔는데, 내리는 문 옆에 하얀 세일러 복장의 해군이 한 명 서 있었다. 술 취한 한 사내가 해군을 버스차장으로 착각하고 차비를 주려고 했다.
"어이 차장(딸~꾹), 두 사람 차비가 얼마지?(딸~꾹)." 그러자 군바리는 발끈하며, "아저씨, 저는 차장이 아니라 해군 병사입니다."라고 부동자세를 취하며 목소리를 올렸다.
그러자, 그 사내는 깜짝 놀라며 "뭐, 해군? 이봐 친구, 이거 큰일 났네... 우린 지금 버스를 탄 게 아니라, 군함을 탄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게 분명하네."
 
과학 철학자이자 시 문학자였던 ‘가스통 바슐라르’는 <불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에서, 술(중에서도 주로 브랜디처럼 독한 증류주)을 ‘불의 물’이라 불렀다. ‘바슐라르’가 보기에 술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물이였던 거다.
술, 그 불꽃같은 향락의 매체가 분명코 ‘금단의 액체’는 아니다. 작고한 문학비평가 ‘김현’은, "술은 말하는 사람의 혀를 불태운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는 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 중에서도 사랑의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다. 사랑이야말로 불 중의 불이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김현’ 선생 또한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썼거니와, 나 역시도 술 없는 나머지 인생을 상상하기는 끔찍하다.
 
아마존의 정글로 탐사를 떠나게 된 어떤 탐험가가 의사에게 물었다.
"만약, 이름도 모르는 독사에게 물리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위스키 병을 꺼내야 합니다."
"상처에 바를까요?" "아뇨, 단숨에 들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독이 가시게 될까요?" "아니죠, 좀 더 즐거운 기분으로 죽게 되는 겁니다."
 
1974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처음 선보인 가수 ‘이장희’의 노래 중에 우리 세대들이 술자리에서 즐겨 부르는 잊을 수 없는 그 노래 ‘한 잔의 추억’...
노래의 가사 중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 반쯤 찬 술잔위에 어리는 얼굴/ 흔들리는 불빛위에 어리는 모습/ 그리운 그 얼굴을 술잔에 담네./ 마시자, 한 잔의 추억~/ 마시자, 한 잔의 술~."이라는 대목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울분과 슬픔을 술과 함께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군사 독재 정권의 그 시절 우리들의 절규 그리고 고독한 메타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