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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그리움의 이름으로

Led Zepplin 2022. 12. 30. 18:18

 

눈 내리는 들판을 걸었어.

혼자 걸었지.

끝없는 들판은 눈보라도 세찬데

한사코 바람 오는 쪽으로만 걸었어.

눈물도 흐르고 콧물도 흐르더라고.

오늘도 그날처럼 눈이 내리는데

하염없이 걸었던 그 날들의 들판이

마냥 꿈결인 듯싶네.

 

어제부터 내린 눈은 밤새 내리고도 멈출 줄을 모르고 지금도 내립니다. 이런 저녁나절, 아직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독한 사람일까요.

월수 70만 원을 움켜쥐고 퇴근하던 오래전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 올라가는 골목길의 눈발은 삶의 무게만큼 힘겹도록 구부정한 내 어깨 위로 쌓였습니다.

골목길 모서리의 포장마차에 들러 빈속에 소주 한 병을 들이붓고 담배에 불을 붙이면 담배 연기는 찬바람에 흩어지며 뿌옇게 번져나가고 문득 사는 게 막막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으로 눈물 삼킨 목 안으로 다시 한 잔을 털어 넣습니다.

빙판으로 번들거리는 비탈길을 낮은 포복으로 걸어 골목길 반지하의 교회 앞을 지나려면 가로등 불빛에는 교회 앞에서 죽어버리자고 죽어버리자며 골목길 담벼락에 머리를 박고 일부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죄 없는 눈발들이 부러진 허리춤을 부여잡고 신음하였습니다.

막다른 골목 끝 철제대문을 들어서면 어둠은 천근 빚더미로 몰려와 목을 내리눌러 숨쉬기조차 힘겨운데 월수 70만 원의 삶일지라도 포기하지 말라며 바람은 밤새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흔들고 털어대면서 지나갔습니다.

세찬 바람 속 눈보라 그날들의 아픔을 이제 다시는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으렵니다.

 

함박눈 내리는 이 밤이 지새기 전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미 내 곁을 스쳐 지나간 그 사람들에게도 편지를 쓰겠습니다.

막차가 떠나간 간이역 대합실에서 당신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길고 긴 편지를 쓰겠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하얀 그리움으로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낙엽과 함께 멀리 사라질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의 추억을 당신에게 고백하려 합니다.

멀리 부두 끝의 바다가 보이는 명산동 홍약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린 기억도 떠오릅니다.

삶이란 것이 한겨울 추위를 피하려 껴입은 옷가지처럼 이토록 거치적거리고 힘겨울 때면 차를 달려 군산항 밤 부두의 난간에 서서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야만 하는지 먹자골목 물웅덩이에 내던져진 스팸 캔처럼 찌그러진 삶을 얼마나 더 살아내야 하는가를 밤 바다에게 소리쳐 물어보지만 언제나 바다는 차갑게 말이 없고 어둠 속 파도에 일렁거리는 낚싯배들의 불빛만이 얼굴을 쓰다듬었을 뿐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화살을 쏘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청춘의 잠 못 드는 눈 내리는 밤, 사락사락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더욱 아득하기만 하던 그 시절은 젊음이라는 부품 없어 고치지 못하는 오래된 엔진의 낡은 선박처럼 바람이 부는대로 표류하는 이름 모를 고독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한 시절 완벽한 직장인이라는 멋진 과녁이 꿈이었던 지나온 세월의 숫자가 믿기지는 않지만 이제 모든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당신마저 떠나버린 이 시간, 텅 비었기에 더욱 허전한 호주머니 속에 남은 고독한 사랑을 만지작거리고 사거리 길모퉁이를 홀로 서성거리며 폭설 속에 잠든 이 세상의 끝에서 언제까지라도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오지 않는 그 기다림 속으로 세월은 둑 터진 강물처럼 무심하게 흘러만 갔으며, 기다리며 내가 부른 노래는 낙엽이 되어 차곡차곡 발등에 쌓여갔으나 그대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추억 속의 그 시간은 우리들의 영가가 되어 밤하늘의 별빛처럼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영롱합니다.

슬프고도 기쁘며 기쁘고도 슬픈 부조리극의 배우처럼 초고속 열차에 매달린 채 어쩔 줄 모르며 살아낸 지난 한 해, 그 모든 것은 내가 만든 인연의 결과라 생각하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지나간 시간의 경험에서 체득한 지혜로운 정신과 유연함으로 새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대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