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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Rhapsody)

Led Zepplin 2023. 4. 12. 17:29

 인간의 기억은 오류가 그 장점이며 시간을 가로지르는 다리와도 같은 것이다.
‘성훈’은 다재다능하고 머리도 명석한 친구였으며, SKY는 아니지만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전통 있는 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하였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으나 나름의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문장력/ 날카로운 직관 등으로 다른 기자들보다 지상에 기사를 훨씬 더 많이 올리게 되었다.
자연스레 ‘성훈’은 입사 초부터 사내에서 동기 중에서 눈에 띄게 되었으며, 신문 지상에 오르던 이름 석 자는 차츰 독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던 거다.
나는 그보다 입사 3년의 선배이지만, 그는 나보다 더 주목받는 후배 기자였다. 그는 업계의 주목받는 기자로서 똑똑하고 침착하였으며 친절한 미소 덕분에 사내 주변에 적이 없는 편이라고 봐도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훈’은 사회부 기자로서는 제법 안정적인 위치를 잡았으며 사내에서도 동기들보다 진급이 빨랐다.
진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으로부터 표창장도 수여 받아 사내의 인지도까지 올라가면서 여직원들로부터 구애의 미소를 여럿 받았던 것으로 전해한다.
세월과 함께, 나는 그와 두세 번 등산을 다니면서 주말을 보낸 적도 있었으나 이렇게 저렇게 바쁜 기자의 일상을 보내다가 같은 그룹사의 방송국으로 발령을 받아 그를 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일에 파묻혀 살게 되었던 거다.
신문사이건 방송국이건 기자라는 직업은 다른 직장인과 달리 대단히 바쁜 직장인이다. 직장인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몰라도 사명감을 요구하는 사장과 임원들의 혹독한 요청이 아니어도 정말 미친 작자들이 아니면 제정신으로는 살아내기 어려운 환경인 것은 틀림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신들린 것처럼 살아내도 자리보전이 어려운 매스컴의 환경으로 고군분투하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바람결에 ‘성훈’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시간에 방송사 옆의 설렁탕집에서 한 그릇을 비우고 근처의 카페에서 동료들과 아이스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다가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사래가 들릴 뻔하였다.
왜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동료 여직원은 ‘성훈’이 생각하는 직장과 신문사의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괴리감이 아니겠느냐는 진단이었다. 나는 일면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걸 모르고 도전한 사람이 아니었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의아한 면이 있어서 갸우뚱하여 졌다. 그러나, 그것은 점심시간을 잠시 때워준 햇살 가득한 겨울 도시 찻집 창가의 따스함으로 지나간 한 토막의 삽화일 뿐이었던 거다.
그날 저녁 퇴근길, 막히는 도로 위 수많은 신호에 걸리면서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귀가해야 하는 승용차 안에 흐르는 음악 칼럼니스트 ‘전기현’의 목소리와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성훈의 퇴사에 대하여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문사 근무 시절 바로 옆방의 부서에 근무했던 성훈은 아마도 진급을 하면서 차츰 안정적인 직장을 희망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미디어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바쁘고 거친 일상이 그를 허탈하게 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며, 나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더구나, 우리 세대들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 새로운 강국을 만들어내는 현대 인류가 만든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강력하고도 부유한 나라를 창조해낸 그 첫 세대 아닌가 말이다. 기계 분야는 기계 분야대로 전기/ 전자 부분은 그것대로 식/ 음료 부분은 그들 나름대로 조선은 조선대로 자동차는 그것대로 그 모든 분야에서 우리 세대들은 처음으로 새로운 환경과 기술과 기능과 국가를 창조해낸 인물들인 거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이후, 시간보다 더 급변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 그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이루어낸 성훈이 삶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더 이상 발현시킬 수 없는 현실과 인간 이상의 철학과 행동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좌절을 느낀 것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이다.
 
나는 근무하는 방송사가 분사와 지방 방송국을 편성하는 격변을 치르면서 또 한 해를 거칠게 보냈다. 아이들은 날마다 거짓말처럼 성장하였으며 내가 미친 듯이 방송국 일에 몰두하는 시간에 아내는 아이들의 공부와 입시에 매달려 지냈다. 북한은 핵무기를 발전시켰으며 우리나라는 더불어 함께라는 모순 속에서 낮과 밤을 소모했다.
무더위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든 어느 주말 낮, 이른 점심을 먹은 나는 모처럼 호연지기를 다스릴 양으로 우리 도시가 도립공원을 준비중이라는 산에 오르겠다며 이름도 거창한 백두산 물 두 병을 배낭에 넣고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에 야심차게 산엘 올랐으며 여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등산에는 아직 땀이 필요하였다. 씩씩대며 산을 오르고 계곡을 누비며 얼마를 걸었을까 허리와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기에 계곡물이 흐르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에서 모처럼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쉴 요량으로 이곳저곳 장소를 물색하며 계곡을 누볐다. 오랜 물색 끝에 제법 맞춤한 장소를 발견하고 등에 달라붙어 땀에 쩔은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두고 바지의 아랫단을 둥둥 걷어붙인 채 계곡물에 발을 담궜다. 계곡물의 차가움은 짜르르하게 냉기를 온몸에 전해왔으며 물가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배낭의 물을 마시면서 계곡의 서늘함을 음미하고 있었다. 사위는 고요하며 간혹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왔고 인적이 없어 더욱 쾌적하여 피곤함과 더위가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도록 얼마를 그렇게 쉬었을까, 문득 주변이 서늘해지면서 찬바람이 몰아쳐 왔다. 갑작스러운 냉기에 온몸이 오싹함을 느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싹한 냉기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이름 모를 어색한 기분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수습하고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려는 그 순간, 수풀 속에서 이상한 물체가 어른거렸다. 자세히 보려 하였지만, 물체는 자세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며 얼핏 멧돼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물체는 숲속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는데, 나무와 수풀 속에서 놀랍게도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선배님, 제발 놀라지 말아 주십시오. 믿어지지 않겠으나, 저는 신문사 시절의 후배 ‘성훈’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회부 기자였던 ‘성훈’입니다.”
소리는 잠시 뜸을 들이는듯 싶더니, 이내 평정심을 찾고 이어졌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려야 어차피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선배님처럼 저 또한 산을 좋아하는지라 기자 시절 마음이 고단하고 삶이 환멸스러우면 높은 산을 찾았으며, 그런 날은 그 산의 휴양림에 있는 방을 얻어 숙박을 하곤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심야의 잠결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깨어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달려 나가 소리의 실체를 따라가다 보니 쫒으면 달아나고 쫒으면 달아나기에 얼마인가를 달려가며 쫒다 보니 어느새 제가 네발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온몸을 훓어 보니, 제 몸에는 네 개의 다리에 온몸은 털이 났으며 이마에는 뿔이 솟았고 근질거리는 등에는 날개 비슷한 형체가 보였으며 입은 멧돼지처럼 불쑥 솟아난 채 검붉은 괴수의 형태로 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꿈일 것이라고 꿈속의 꿈일 것이라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인셉션’의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몸부림을 치며 끔찍한 저의 형태를 부인하여 보았지만, 아무리 머리를 털고 온몸을 흔들며 소리를 쳐봐도 제가 짐승으로 변모하였다는 사실은 틀림없었다는 것입니다.
울다 지쳐 곰곰이 저의 몸 형상을 쳐다보니, 언젠가 공주의 국립박물관에서 보았던 백제 ‘무령왕릉’의 능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악령이나 도굴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묘실과 연도에다 둔다는 상서로운 짐승 그 이름도 생소한 ‘진묘수(鎭墓獸)’ 그것으로 생각됩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차차로 날이 새고 계곡물에 엎드려 내 모습을 비추어봐도 믿을 수 없지만 영락없는 그 ‘진묘수’ 그 형상이었던 겁니다.
절망으로 며칠을 산속을 헤매면서 울부짖으며 지냈지만, 짐승으로 변모한 저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첨단의 현대인으로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었던 내가 이런 짐승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기 이전에 나는 짐승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윤회라는 철학을 떠나 차차로 짐승의 마음으로 변화하는 나의 품성과 본능을 생각하면 더욱 끔찍해집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날마다 짐승의 본능을 발현하며 날짐승을 잡아먹고 생식을 하면서 연명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식욕이 증가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놀랍기는 하지만, 어쩌면 내 안에 살아있던 인간의 본성이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온갖 생각과 철학으로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부조리와 현상을 잣대질하며 피곤하게 살아왔던 그 시절이 오히려 지긋지긋하기도 하다는 생각이죠.
인간이라는 동물은 이성과 감정의 동물인가요 아니라면 물질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일까요. 진리와 정의를 추구한다는 인간의 명제는 삶의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결과의 산물일까요.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한 인생의 노정에서 우리는 신인지 조물주인지 께오서 하사하신 삶을 슬픔없이 즐기며 만족하면서 살아내 지고 있는 것인가요.
밤이면 굴속에 엎드려 구슬프게 울면서 스스로의 자신을 돌아봅니다. 단 한 편의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서 작가이기 이전에 기자가 되었던 나는 인간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짐승으로 살다가 평생을 마쳐야 한다는 현실이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내 운명이라면 나뿐이라 자조하며 지내겠으나 짐승으로 변모하여 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여러 동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쉬쉬하면서 살고 있으며 다들 서로를 모르고 자기 앞만의 인생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서 주변의 변화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주변뿐 아니라 자신의 변모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자신의 이야기를 오래 늘어놓던 ‘성훈’은 아니 ‘진묘수’는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 지금은 아직 자신이 인간의 본성이 살아있기에 나를 잡아먹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시간이 흐르고 먼 미래에 다시 만난다면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산에 다닐 때는 항상 조심을 하고 무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면서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훈’은 본인의 자태를 드러내 노을 속에서 번득이는 야수의 매력적인 모습을 위용있게 보여준 후에 커다란 울부짖음과 함께 숲속으로 내달려 몸을 감추었다.
그 이야기와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나는 그 매혹적인 동물 ‘진묘수’가 사라진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그 산을 내려왔는지 모를 지경으로 내달려 하산을 하였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