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우리들의 추억

Led Zepplin 2023. 7. 20. 00:25
(전남 장성 '백양사'의 홍매)

 
  추억은 아무래도 기억과는 좀 다르다. 우리들의 추억이라는 단어에는 막연하나마 슬며시 저며오는 아픔이라든지 아스라한 미련이랄까 까닭 모를 애틋함이랄지 아무튼 그런 어떤 서정이 있다.
추억이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와 사랑했었던 기억/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기억/ 재수를 결심하면서 맥 빠지고 쓸쓸했던 기억/ 사회에 진출하기 위하여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시험에서 탈락했던 순간의 암담한 기억/ 처음 입사한 회사의 두렵지만 새 출발로 설레었던 기억들이 있지만, 역시 아무래도 그 누군가 때문에 혼자 아파하며 무작정 걸었던 그때의 풍경과 그 순간들의 기분 등이 문득 어느 순간에 또는 아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 떠오르는 바로 그것이 추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비가 주룩주룩 또는 소리도 없이 내리면 추억의 금고가 열린다. 그 금고 안에는 장미꽃과 〈스타벅스〉/ 바람이 불면 덜컹거리던 창문의 잠 못 이루던 젊은 날의 하숙집/ 짝사랑의 아픔으로만 남은 친구의 누나뿐 아니다.
그 오래된 금고 속에는 뮤직박스 안에 앉아 음악을 들려주던 나에게 쪽지를 건네고 총총히 사라진 소녀/ 비 오는 휴일 낮 방바닥에 엎드린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Sarasate’의 〈Zigeunerweisen〉/ 졸업과 함께 배를 타려고 선박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다니던 경부선 야간열차의 〈대전역〉 ‘가락국수’/ 1976년 프랑스 파리 〈오를리공항〉 직원들의 파업으로 인한 비행기 운항 중단의 행운을 얻어 처음으로 외국의 시내 구경에 나선 파리의 황홀한 밤 풍경/ 한국 초현실주의 대표작가인 ‘조향’ 교수의 문학 수업을 직접 받게 된 경이로운 날들의 꿈도 결코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당분간 금주 중이지만, 술을 마시는 날 중에 비 오는 날에 마시는 술을 최고로 꼽는다. 비 오는 날 좋아하는 음악을 친구들과 함께 들으며 빗소리와 함께 느긋하게 마시는 술은 정말 그 자체로 행복이다. 우리는 비와 함께 세월에 취하고 술에 취하며 친구에 취하여 노래하는 진정한 비의 나그네들이다. 그 옛날 아름다운 그 시절 꽃밭에서 우리가 소리 높여 부르던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 속에 열변으로 쏘아 올린 화살들은 지금은 어디쯤 날고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추억은 대개 아련함과 함께 한다. 추억이라는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장소에서나 덜컥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었더라도 서로가 떠올리는 감정과 추억이 제각각일 때가 있다.
가끔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 다양한 추억들이 펼쳐지는데 같은 시공을 함께 공유했으면서도 서로들의 시점에서 기억하는 순간들과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피차 서로 다르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 알게 되는 전혀 다른 사실들에 은근히 놀라거나 당황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것은 함께 나이 든 오랜 부부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젊어서 우리는 같은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그때가 내게는 가장 즐겁고 재미있던 추억의 날들이었던 것에 반하여 함께 다니던 내 친구에게는 상처로 얼룩진 시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그에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추억과 기억의 모습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순간의 기쁨도 차차로 옅어지고 결국에는 잊히고 말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쉬워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들의 내면에는 대단히 많은 아름다운 밤과 낮의 추억/ 사람에 대한 추억/ 지역과 장소에 대한 추억/ 온갖 사물에 관한 추억 따위들이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존재하기 때문이다.
 
옛사랑이 그리우면 군산에 간다.
도선장이 있던 군산횟집 앞에 서면
기억 속에서 솟아오르는 추억 하나
통통거리며 금강을 건널 때
선착장에 닿기 전에
조바심으로 입안에서만 맴돌던
사랑한다는 그 말
애타는 내 맘도 모른 채
출렁거리던 바다가 야속하기만 했다.
 
옛사랑이 그리우면 군산에 간다.
승용차가 없으면 기차라도 타고 가야지
꽃 같은 그대를 그리워하며
홀로 떠돌다 낡은 바람 하나
외롭게 선착장에 서서
목청껏 소리쳐 불러 보고
부르다 한참 울다 돌아와도 좋겠다.
울다 뒤돌아 온단들 잊히랴 마는
석 삼 일은 잊을 수 있지 않으랴.
 
옛사랑이 그리우면 군산에 간다.
그대의 말 없는 말 잊히지 않고
겨울 상류에서 떠내려온 탁류의 유빙
출렁이는 물결 앞에 선 장승의 노래
누구도 듣지 않는 메아리가 된 노래
식어버린 침묵으로 우두커니 남아
나와 그대의 빗겨간 인연
우리는 그대로건만 세상만이 바뀐 것
변해버린 세월 앞에 아직도 살아남아 있습니다.
 
                      - - - - -    우리들의 추억/ 202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