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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그립다

Led Zepplin 2023. 8. 15. 16:04
(대둔산의 가을)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 결근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 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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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 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이 글은 국회의원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연설의 일부입니다.
 
‘노회찬’ 의원이 남양주의 마석 모란공원에 지친 몸을 누인지 벌써 5년하고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김근태’를 포함한 수많은 민주 영령이 이 땅의 약자들을 대변하며 진보적 가치의 확산을 위하여 헌신한 그와 함께할 것이라 믿습니다.
‘노회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으며 허망하게 스러져간 안타까운 주검 앞에서 탄식이 나옵니다. 그의 인간적인 풍모와 진솔한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말과 행동의 일치를 위하여 몸부림친 그의 참다운 정치 역정에 공감합니다.
그를 조문하는 사람에는 좌우와 보수/ 진보의 구분이 없었으며, 휠체어를 타고 먼 길을 달려온 장애인/ 굽은 등을 이끌고 찾아온 노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노회찬’ 그는 기득권과 부패한 세력에게도 악담보다는 은유와 풍자 그리고 해학을 담은 촌철살인으로 국민에게는 미소를, 공격받는 상대에겐 부끄러움과 자성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노회찬’은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신 선포(1972년 10월) 이듬해 경기고에 입학한 ‘노회찬’은 유신 비판 유인물을 직접 제작해 학교에 배포하였으며, “유신 타도”를 가방에 써 붙이고 다닌 열혈 학생이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고대 정외과에 입학하였으며, 학창 시절 내내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했습니다. 나 역시 유신의 엄혹한 시절 숨은 운동권 학생이었던 사람이지만, 그가 평소 생각했던 당시 PD계열의 노동운동 정신을 오늘은 논하지 않고 싶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자 민노당 소속으로 초선 의원이 되었으며, 국회에 입성하자 삼성에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그 후, ‘삼성 엑스(X) 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떡값’을 받은 부패검사 7명의 실명을 폭로하였습니다.
총리 출신인 ‘황교안’과 경기고 동기동창이지만, ‘노회찬’은 입신양명을 거부하고 가시밭길 정치인으로 고군분투하였던 것입니다.
‘노회찬’이 초선 시절부터 강조했던 삼성의 잘못된 경영형태는 ‘이건희’ 회장 이후 ‘이재용’ 부회장 경영 시대’에 와서 ‘최순실’ 게이트를 만나 ‘이재용’의 구속 기소라는 초유의 결과로 이어졌으며,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뒤에 결국 불명예로 퇴진했습니다.
‘노회찬’은 ‘엑스 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내려놨던 2016년 드루킹 쪽으로부터 4,000만 원을 받은 순간적인 실수에 대한 책임으로 강직하고 올곶은 성격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서민들의 친구인 ‘노회찬’은 칼부림/ 태풍/ 물가 폭등/ 정쟁 등으로 어수선한 현재의 시국을 보면 더욱 그리운 사람입니다.
지난 정권이 1,000년 원수인 중국과 신정(神政)체제인 북한에게 손바닥을 비비며 내다 버린 자유민주주의를 되찾아 오기 위하여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손실을 각오하고 탄생시킨 이 정권의 우매함으로 반복하는 도돌이표 실수를 바라보면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그나마, 사이비 사기꾼 손에 나라가 떨어지지 않았음에 감지덕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칼부림/ 잼버리/ 수해/ 태풍/ 물가 폭등/ 정쟁 등으로 어수선한 국면 앞에 따뜻한 상식의 인간 ‘노회찬’ 그는 더욱 그리운 사람입니다.
역사는 연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말입니다. 참담한 비극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슷한 사건이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반복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지적했듯이, 인류가 자유 평등의 기본적인 가치를 더욱 확고히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충실히 대비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불행한 반복이야말로 또 다른 값비싼 댓가를 치루는 대단히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노회찬’은 아래와 같이 말하여 우리의 나태한 영혼을 일깨웁니다.
“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이 길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고 길이 없으면 만들면서 걸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