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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너〉가 되다

Led Zepplin 2023. 10. 28. 21:27

('몰튼'의 TSR9)

  동창회에 가보면, 젊었을 때는 여럿이 한데 모여 왁자하게 떠들며 누구랄 것 없이 대개는 술 마시고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헤어진다.

차차로 나이가 들면서 업계를 떠나 은퇴하고 나서 동창회에서 만나면, 어느새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이 되어 앉는 자리도 구분대로 모여 앉게 된다.

모임의 시간이 흐르면서 비주류는 점차로 분위기가 소곤소곤 조용해지는 반면 주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로 술기운과 함께 열기가 더해지고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된다. 비주류의 동창들은 턱을 괴거나 팔짱을 낀 채로 왁자한 주류 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으며 주류의 동창들은 비주류 그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벌건 얼굴로 웃음꽃이 만발한 채 자기들끼리 연신 부어라 마셔라 하며 신이 난 태도들이다.

그러나, 옛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흥에 겨운 동기생들에 반하여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애가 타는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회장보다 오히려 동기회 모임의 총무이다. 왜냐하면, 주류들은 연신 서빙하는 이모에게다 대고 이모, 여기 쏘주 세병 더~!”를 외치기 때문이며, 회비는 일단 액수가 정해져 있으되 쏘주는 가격이 오르거나 말거나 동창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야속함이다.

 

동창회 모임의 대화 내용은 연륜과 함께 이미 평생의 일을 떠나있기 때문에 건강과 운동이 대부분을 이룬다. 골프는 골프파들끼리 주로 모여 앉고 테니스는 그들대로 잔차는 잔차대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1차에서 못다 핀 이야기꽃은 커피샵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어찌어찌 나와 동창 두엇은 잔차팀에 합류하여(전혀 예기치 못한 우연이었음) 커피나 한 잔 더하자는 열성 잔차 친구의 권유에 따라 얼떨결에 졸래졸래 커피샵으로 따라 들어간 거였다. 그 얼떨결의 졸래졸래에 목돈이 빠져나가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만남의 회차가 거듭되면서 은근한 권유가 뒤따랐다. 건강에는 잔차가 좋으며 특히 허벅지가 굵어지며 허벅지가 힘차게 되면 알지.. ?^^”“좋은 거여~!!”라는 잔차를 즐기는 친구들의 아리송한 권유인지 유혹인지에 따라 얼떨결에 어벙한 나와 말수가 적은 내 친구는 그들의 세계에 한 발 두어 발 더 따라 들어서고야 말았던 거다.

 

가을의 어느 햇살 좋은 오후, 친구와 나는 평일에 일찍 점심을 먹고 인근 대도시의 유명 브랜드 대리점들을 순회하며 저녁 늦게까지 육회비빔밥을 사 먹어 가면서 눈 호강을 하고 다녔던 거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친구와 나의 성격은 노심초사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중고부터 브랜드까정 한 달여를 파고들었다.

우리 친구들은 대부분 MTB 기종을 구하여 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나이가 들어 로드 자전거가 미끄러짐에 약하기 때문에 낙차 사고를 방지하고자 산에 타고 다닐 것은 아니지만 낙차의 위험이 적은 MTB를 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사정상 우락부락 야성적인 MTB보다는 로드가 더 좋아 보였고 그보다는 아기자기한 미니벨로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몰튼(MOULTON)이라는 브랜드의 영국에서 만드는 수제 자전거를 보았다.

 

영국캠브리지 대학출신이며 왕립공학원부원장을 지낸 알렉스 몰튼(Alex Moulton)박사가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자전거를 연구 개발 제작하고저 설립한 몰튼(Moulton), 1962년에 출발하였으며 아직도 기계화 양산 시스템이 아닌 직접 손으로 만드는 수제 자전거이다.

나는 그 잔차를 처음 보는 순간, 몰튼의 잔차에 꽂혔다. 미니벨로가 주는 일반적으로 소극적인 상식을 버렸으며 에펠탑을 떠오르게 하는 메카니컬한 자태와 균형미 그리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구성 부품의 고급스러움 또 하나 다양한 매력적인 색상들. 그러한 매력적인 자태처럼, 몰튼의 잔차는 미니벨로의 롤스로이스라는 별칭이 있었다.

한순간의 만남으로 매혹되었으면서도 오래 망설인 이유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 브랜드의 이 모델 저 모델을 기웃거리며 밤잠을 설치면서 망설였던 거다.

그러나, 비교의 어느 순간에 나는 나대로 내 개성은 내 개성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야말로 회장의 지시에도 거역하며 장래의 조직을 이끌었던 나답다는 판단이 서자 나는 주저 없이 아침 일찍 서울행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였던 거다.

몰튼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메카닉 엔지니어인 MN스퀘어대표께서 직접 세팅하여 준비하여 주신 노후에 만든 나의 친구에게 라라라는 애칭을 부여하며 햇살과 바람을 마음껏 즐기고저 늦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몰튼을 타는 사람 몰트너의 한 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