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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Led Zepplin 2024. 7. 12. 01:25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브릿지)
 
  신부와 목사 그리고 랍비 세 사람이 모여 앉아 각기 자기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다.
 
신부가 먼저 말했다.
"나는 땅에 원을 그려놓고 이 헌금을 모두 하늘로 던지겠습니다. 그리하여, 원 밖에 떨어진 돈은 자선사업에 쓰고 원 안에 떨어진 돈은 내 생활비로 쓰겠습니다."
 
신부의 말을 들은 개신교의 목사가 의견을 말하였다.
"그래요? 그럼, 나의 의견을 말씀드리지요. 나는 바닥에 선을 그어 놓고 돈을 하늘로 던져서 왼쪽에 떨어진 돈은 자선사업에 쓰고, 오른쪽에 떨어진 돈은 내 생활비로 쓰겠습니다. 그 결과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겠지요."
 
목사와 신부는 그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랍비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윽고, 랍비가 말을 하였다.
"나도 두 분처럼 돈을 하늘로 던지겠습니다. 그럼, 자선사업에 필요한 돈은 하나님께서 거두실 것이고 나에게 주실 돈은 전부 땅으로 떨어뜨리실 겁니다.“
 
흥겨운 가스펠 송의 합창이 끝나고 목사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그동안 조그만 개척 교회로 출발하여 넓은 주차장이 있는 대형 교회를 성전으로 건축하고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상환하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하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불이 난 상점 안으로 어린 여동생을 구하러 뛰어 들어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결국은 죽음에 이른 비기독교 소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을까요?
선하고 숭고한 희생으로 죽어간 소년이 단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후에 ‘지옥’에서 고통받는다는 구원의 논리를 믿어야 합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 가련한 소년을 ‘지옥’으로 보낼까요.
〈크리스천인 우리가 가는 길만이 ‘지옥’으로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독선의 논리를 세상에 설파해야 합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합니다. ‘지옥’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쓰레기 소각장을 가리키던 단어가 오역된 것일 뿐입니다.“
 
목사는 ‘지옥’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주장하면서 공동체의 믿음을 근본부터 뒤흔들만한 급진적인 설교를 내놓습니다.
‘지옥’을 부정하고 믿음과는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목사 ‘폴’의 설교에 교회 구성원들은 혼란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며 부목사 ‘조슈아’는 예배 도중에 대놓고 거칠게 반론‘을 제기합니다.
’조슈아‘ 부목사는 주말에 동네의 술집을 돌며 취객을 향해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경고할 정도의 근본주의적 인물입니다.
’지옥‘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부목사 ‘조슈아’는 교회에서 나가고 ‘폴’ 목사의 교회는 계속된 회의와 갈등 속에서 교세가 점차로 위축됩니다.
 
장로 ‘제이’는 ‘조슈아’ 부목사의 선교 재능을 아깝게 생각해 ‘폴’ 목사를 설득하려 합니다.
독실한 평신도 ‘제니’는 “벌을 받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지옥이 없다면, 히틀러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무엇보다 ‘폴’ 목사가 설교한 시점이 교회 건축을 위한 빚을 다 갚은 날이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이 파격적인 설교를 들은 신도들이 떠나가면 채무를 갚지 못할까봐 ‘폴’ 목사가 철저히 계산된 시점에 설교를 했다는 것이 신도들 비판의 요지입니다.
 
연극 《크리스천스》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한 신학의 논쟁에만 국한된 연극은 아닌 것으로 판단합니다.
자기의 믿음을 위해 타인과 싸우고 갈라서길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돌아서면 흔들리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고독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핀 라이트(어둠 속에서 극히 한정된 일정 부분만 부각 되도록 밝게 비추는 조명등)에 몸을 반 정도만 드러낸 채 이어지는 ‘폴’ 목사의 독백은 소수자 내면의 고독과 회의를 극대화하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믿음을 기반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각자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이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의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연극 《크리스천스》는 복잡한 현대 사회의 믿음과 공동체, 그 사이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권리 간의 충돌과 딜레마에 대하여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연극 《크리스천스》의 ‘민새롬’ 연출가는 “작중에서 ‘폴’ 목사의 몰락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시작이기도 하다.”며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힘쓰는 분들에게 이 연극이 위로와 용기를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6월25일부터 7월13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크리스천스》는 〈‘오비 어워드’ 극작가상〉 등 다수의 희곡상을 수상하며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뉴욕시의 비상업적 공연 극단)의 큰 반향을 일으킨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희곡이 그 바탕입니다.
 
2011년, 미국 미시간주의 대형 교회 ‘마스 힐 바이블(Mars Hill Bible)’을 일군 교계의 록스타라고 불렸던 저명한 목사 ‘롭 벨(Rob Bell)’은 자신의 책 『사랑이 이긴다 : 천국, 지옥,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운명 Love Wins: Heaven, Hell, and the Fate of Every Person Who Ever Lived』에서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 천국에 가고, 수십억 명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게 가능할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에 영원한 고통을 선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여 지옥의 존재를 부정한 이후 교계를 발칵 뒤집고 결국 ‘성경적 진실에 대한 배교행위’라며 교계에서 퇴출된 사건이 이 희곡의 모티브였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야만 했던 위대한 영혼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