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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 곳에"

Led Zepplin 2008. 7. 27. 20:05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가야 사람들은 사람다워질 수 있을까?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얼마나 더 멀리 바다를 날아가야만 비둘기는 쉴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터져야만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끝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친구여, 묻지 말게나 오직 저 불어오는 바람만이 알고 있거늘... 저 바람만이 알고 있거늘...

                                                                                                 ------  'blowing in the wind / Bob Dylan'

 

지금까지 제작된... 월남전을 다룬 최고의 영화는 단연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 못지않게 재미있고 볼만했던 영화엔 '라이언일병 구하기'와 로빈 윌리엄스의 '굳모닝 베트남'이 기억에 남는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즐거운 인생>이 개봉하자마자 흥행 성적표를 체크하기도 전에 다음 영화인 <님은 먼곳에>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님은 먼 곳에>의 제작 동기를 “그 시대를 살았던 슬픈 우리네 어머니, 여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월남전 당시 한 사진 속의 위문공연단 여가수를 본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왕의 남자><라디오 스타><즐거운 인생>의 인간을 주제로 삶을 이야기해온 이준익 감독은, 인간의 역사에서 남성이 만든 가장 악질적인 행위중 그 대표가 전쟁... 20세기의 대표적 상처로 얼룩져 있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시어머니의 억척에 못 이겨 '아직 씨받아 내지 못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 전쟁의 한 복판에 뛰어든 시골 여자 순이가  위문공연단의 싱거 '써니'로 변신하여 남편을 찾는 이야기를 그린 이준익 감독의 재기넘친 영화이다.

 

아내 순이에게... "니 내 사랑하나?"라는 모욕적인 말을 남긴 채 전쟁터로 가버린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 한복판을 꿋꿋하게 헤쳐가며 강인한 내면과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면서, 불이 물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는 연꽃처럼 순이는 강하게 변해가는 한 여자를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과 포용력을 담아낸 <님은 먼곳에>는 전쟁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부여했으며, 보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영화이다.
전쟁의 공포와 참혹한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의 한복판을 관통하며 평범한 여성의 눈에 비춰진 풍경은, 이데올로기를 떠나 전쟁이 인간에게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며 고통인지를 전쟁의 아이러니와 슬픔을 처절하게 보여줬으며, 헐리우드가 보여주던 식상한 미국 중심의 영웅주의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시선이 아닌 평범한 여성의 눈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조망한 영화라는 거다.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중... 베트콩에게 붙잡혀 즉결처형의 순간에 순이가 애처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멤버 전원이 생명을 구하게 되는 장면이나, 베트콩으로 오인되어 미군에게 체포되어 역시도 즉결 처형의 목전에 악단장 정만(정진영 분)이 눈물로 쥐어짜듯이 'Danny boy'를 부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과 연기의 장면이지만)으로써 목숨을 구하게 되는 장면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런 두 장면 모두는, 오래전의 영화 'Mission'에서 남미의 이과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토착민 과라니족에게 붙잡혀 죽음을 앞 둔 현장에서 악기 '오보에'를 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살해를 면하는 서양인 신부 'Jeremy Irons'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리라. 

 

영화는 주제와 무관하게 유쾌하고 즐겁다... <라디오 스타><즐거운 인생>에서 주옥 같은 영화 음악을 선보였던 이준익 감독은 <님은 먼곳에>에서 역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가요부터 OLD POP까지 70년대를 강타했던 히트곡들이 잔잔하게 전개된다. 70년대 최고의 가수 김추자의 불멸의 히트곡 '님은 먼 곳에'를 제목으로 스타트 삼아 �의 신화 신중현과 김추자가 탄생시킨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국인의 전설로 사랑 받아 온 가슴 찌리리한 명곡 'Danny boy' 우리 기쁜 젊은 날 침깨나 뱉던 시절 낭만과 추억의 춤 '고고' 와 '알리'를 떠올리게 하는 CCR의 'Suzie Q' 등 세월이 지나 더욱 아름다운 명곡들로 중년의 눈시울을 촉촉히 적신다.

모든 남성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청순가련한 여인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던 수애가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강한 여인으로 변신하여 연기력을 표현했으며. 진지한 카리스마를 버리고 임기응변에 능한 전쟁터 속의 양아치 '정만'으로 변신한 이준익 감독의 진정한 페르소나 정진영은, 이기적이고 돈만 밝히는 속물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연민과 정이 뚝뚝 묻어나도록 실감나는 캐릭터를 완성시켜 탄탄한 내공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filmography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의 라스트 씬... 순이는 총알과 포탄이 난분분하는 전장터에서 남편 상길을 결국 구해내게 되고... 전쟁의 공포로 인하여 반 넋이 나간 상길의 귀싸대기를 호랑이 개 뺨치듯이 대여섯대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서서히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다.

이준익은 말한다. "순이가 가수로 위문단에 들어가니까. 나는 한 여성이 동년배 남성들 앞에서 비키니 같은 걸 입고 노래를 부른다는 데에는 수치심을 넘어선 어떤 숭고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님은 먼곳에>는 한 여성을 통해 남성성과 대비되는 여성성의 위대함을 쫓아간 영화다.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이 영화는 남성성, 마초성의 폐해를 통해 여성성을 고찰한 영화다. 여성 중심적 시선에서 보여지는 남성의 세계가 궁금했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점점 더 힘을 키우는 남성들의 비겁함을 보고 싶었다. 그 비겁함이 한 여자 앞에서 무너질 때 비로소 자기 안에서 진실함이 나온다."

'님은 먼 곳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