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의회에 참석했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이 볼일때문에 화장실에 갔다.
때 마침 걸핏하면 처칠을 물고 늘어지던 앙숙인 노동당수(勞動黨首)가 먼저 와서 일을 보고 있었다.
처칠은 그를 피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노동당수가 “총리, 당신은 왜 날 그렇게 피하시오?”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처칠은"당신네들은 큰 것만 보면 무조건 국유화 해야 한다고 들이대잖소...”라며 받아쳤다.
마침내 스페인의 단 한 골 승리로 월드컵 축구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이제 무슨 재미로 이 신산(辛酸)스런 세상을 살아야 하나 하고 심드렁해져 있던 참에...
마른장마의 단비처럼 유쾌한 즐거움을 가져다 준...
아니 그래서 더욱 더 한나라당이 두나라당이 되고 마침내 세나라당이 되는 ‘이 전당대회를 일 년 내내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상상도 해 봤는데...
그 와중에는 ‘모래시계의 검사’ 홍준표 의원이 있다.
이 번 한나라당 전당대회(全黨大會)에서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홍준표 의원은 당내 경선과는 인연이 없는 편이다.
지난 9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홍의원은 막판에 등장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패배의 쓴 잔을 맛 봤으며...
이듬해의 대선 경선에서도 이명박 과 박근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래도 홍 의원은 이번엔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한 듯하다.
6.2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졌으며, 더구나 당쇄신 요구가 거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희미한 홍 의원의 선전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홍 의원 자신도 “지금 당이 위기가 아니면 내가 나설 이유가 없다”고 밝힐 정도로 한나라당의 위기상황은 비주류 아닌 비주류 홍 의원에게는 절호의 찬스로 보인 거다.
그러나, 청와대의 의중이 누구에게 있을지를 짐작하는 나는 홍 의원의 도전에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결과는 전체 득표율 2.2%차의 아쉬운 석패.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안 대표를 200여 표 추월했지만, 조직 대결의 마당인 대의원 투표에서는 안 의원에게 650여 표나 부족하다.
‘혁신적 변화에 앞장서겠다’는 슬로건을 걸었던 홍 의원은 결과가 발표된 뒤의 연설에서...
“역시 바람은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 “나도 앞으로 조직을 좀 해야겠다”고 하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대를 아는 돈키호테’ 홍준표의 도전은 여기서 이렇게 멈추어 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의원은 계파도 조직도 없는 철저한 변방의 비주류에서 당내 2위를 차지하는 등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대표 아니면 바로 대선체제로 간다"는 홍 의원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홍 의원은 상대후보를 비판해야하는 무거운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감각을 십분 발휘해 밋밋하게 흐를 뻔 했던 경선전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선거 초반 홍 의원은 조직 면에서 안 의원에 한참 뒤지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선거 중반전 무렵에 “변화를 원하는 바닥 대의원들의 표심이 쏠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안 의원을 거칠게 추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이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안상수 의원의 조직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정견 발표 때 “15년간 누구의 계파에 들어간 바 없다. 이른바 ‘독고다이’(‘혼자’의 속어/일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가...
2위의 당선 인사에서는 자조섞인 “앞으로 저도 조직을 좀 하겠다”고 말하여 좌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치열한 경선의 와중에 홍 의원과 안 의원의 이전투구를 바라보면 우리의 정치현실(政治現實)이 슬프다가도 헛웃음이 나온다.
홍 후보는 “병역기피가 사실이면 당 대표 자격이 없다” “병역비리 백화점” 운운한 모 신문을 들어 안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옆자리의 김성식 후보도 거들면서 “어떻게 7년간 영장이 왔는지 안 물어봤느냐”며 안 후보 때리기에 가세했다.
안 후보의 답변인 즉슨, “노모가 글을 몰라서 영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
이 대목에서 네티즌들의 야유가 빗발쳤다.
“저 하나 살아 보겠다고 자기 어머니를 글도 못 읽는 문맹(文盲)이라 말하는 건 패륜 아니냐”...
‘행불상수’에 이은 ‘패륜상수’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이 난중(?)에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해서 안상수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든 홍준표 후보를 비난하는 글이...
MB친위대인 ‘노노데모’ 자유게시판에 떠서 네티즌들로 하여금 썩소를 짓게 만들었다.
‘suni531’이 작성한 글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은...
두 사람의 학력을 거론하여 “‘고대 따위 나온 사람’이 ‘서울법대 나온 사람에게’ 병역기피의혹제기라니, 할 말이 없다”는 대목 때문...
홍준표의원을 하대하기 위하여 “고대 따위”란 표현을 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고대 따위 나온”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법대 나온” 안상수 의원보다 못한 루저가 되고 마는 것이니...
네 이 X, 네가 정녕 MB친위대의 순이가 맞느냐???
DJ정권(政權)때의 ‘저격수’답게 홍준표 의원은 TV 생중계 토론회에서도 안상수 의원에 대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이날의 또 다른 메뉴는 전날의 병역기피 의혹에 후속탄 ‘개’ 때문에 ‘이웃’을 고소한 사건...
‘상생’을 기치로 내걸었던 안 후보가...
지난 97년 옆집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이웃과 소송한 것을 거론하며...
"지역구 옆집 사람과도 개소리 때문에 화합 못 하는 분이 어떻게 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하고 꼬집은 것이다.
안 후보는 "당시 우리 애가 고3"이었고 "옆집이 개를 10마리나 키웠다"며 반격했지만...
홍 의원은 "그래도 옆집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진돗개 1마리, 셰퍼드 2마리, 새끼 2마리였다"며 꼬집었다.
고려대를 졸업한 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가 된 홍 의원은...
1993년 슬롯머신 수사로 6공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하면서 ‘스타 검사’의 대열에 올라서며 그 이름을 날렸다.
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으로 서울 송파에서 당선된 그는...
국회 진출 뒤 ‘김대중 저격수’ 등의 별명을 얻으며 강성 이미지로 언론에 부각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하여 ‘이명박 과 박근혜’의 양강 구도하에서도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경선 흥행에 일조했다.
경선을 다투기도 했지만 이 대통령이 당선된 뒤 점차 관계가 회복됐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서 연수할 때에는 함께 워싱턴에 있으면서 친분을 쌓는 등 개인적인 인연도 각별하다.
송파에서 동대문으로 지역을 옮겨 내리 4선을 이루었다.
18대 국회에서는 첫 원내대표를 맡아 각종 입법을 처리했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홍준표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이렇게 썼다.
“그는 ‘독고다이’다.
이 풍진 세상 ‘오까네’ 한 푼 없이 ‘패밀리’ 한 명 없이 언제나 ‘원터치’로 자신만의 ‘나와바리’를 구축해 온 그는, 언제나 ‘독고다이’다.
“72년 2월24일 1만4천원” 들고 혼자 서울역에 내린 그는, “어차피 그들을 안 쳐도 내가 죽고...
쳐도 내가 죽을 바에는 내가 먼저 물어버리겠다”며 검찰내부의 ‘다구리’ 위협에도 불구하고...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과 6공화국의 2인자 박철언까지 구속시킨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상사이자 차기 검찰총장 후보였던 이건개도 구속된다.
자금도 계보도 조직도 없는 정치판에서 최 대표로 인해 입지를 갖는다고 생각을 안 하며...
“홍준표는 언제나 홍준표 입장에서 스스로 올라가지 누구 힘을 빌어 올라가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역시 ‘독고다이’다.
조폭이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내 덩치가 좋습니까,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까 검사는 기(氣)로 하는 겁니다. 기(氣)로”라 답하는 고무신 두 짝으로 시작한 검사의 말이...
“싸움이 체격이나 기술로 하는 줄 아냐 깡으로 하는 거야. 깡으로”라 읊는 주먹 하나로 일어선 보스의 말과 이음동의어라는 건, 이쯤 되면 눈치채 줘야 한다.
‘영업상무’들의 얼굴마담 교체 요구라는 업계 초유의 사태에 ‘최 마담’의 ‘기도’로 남은 유일한 독고다이, 접수한 줄 알았던 한나라 ‘업장’에서 또 한 번 혼자다.”
홍 의원의 이런 ‘강성 행보’와 ‘럭비공 이미지’에는 정치적인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홍 의원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 못지않게 당의 화합이 중요한 상황에서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역력하다.
홍 의원이 ‘대몽(大夢)’을 꾸고 있다면...
향후 6개월 내지 1년여 안쪽으로만 ‘강성 행보’와 ‘럭비공 이미지’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힌 후...
남은 1년여 동안에는 안정되고 깊이있는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를 쌓아야 함과 동시에 강팀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자신의 조직을 완벽하게 구축해야만 한다.
우여곡절 피투성이의 전당대회에서 겨우 당대표가 되었지만, 험난한 2년의 역정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음을 안상수 대표는 모르는 듯 싶다.
당대표 경선에서는 비록 졌지만 향후 2년간 치열하게 벌어질 진흙탕의 역정에서 면피했으며...
‘정치는 무거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대중에게 즐겁게 다가가는 홍준표 의원.
다시 2년을 기다려 ‘홍준표의 도전(挑戰)’이라는 새로운 드라마를 기다려보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