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찾아 떠나는 봄의 여행은 지난 겨울의 고단했던 현실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출발한 자동차가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대전IC를 지나자마자 고개를 기어올라 대전터널을 통과하여 고개를 내려달리면...
예나 지금이나 마치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터를 뒤로하고 고향길의 초입에라도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다.
옥천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자동차는 옥천역을 좌로 돌아 밤티재를 향하여 내달린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좌로 때로는 우로 굽이굽이 돌아가지만 시골길이 주는 답답함과 아슬함은 없다.
오고가는 차가 드물게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심에서 흔하게 만나는 성질 사나운 무례한은 보이지않는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 듯 느리게 펼쳐지는 2차선국도를 지나다보면...
좌우에 도열하듯 늘어선 왕벚꽃들의 바람결에 흐드러진 박수갈채가 눈부시다.
어느 한 구비를 돌아서자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나즈막한 야산들의 품속에 아담한 저수지를 온화하게 끌어안은 장화리와 밤개골의 ...
한 바탕 꽃잔치의 전경이 한 폭의 동양화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늘처럼 날씨 화창한 봄날 영국사를 찾아가는 길은...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 홍매화/ 복사꽃 온갖 꽃들과 곱디 고운 연두빛으로 수를 놓은...
무릉도원이요 샹그리라로 들어가는 길이다.
지난 해의 그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과 너무도 짧았던 가을 그리고, 역병과 유래없는 추위를 보내고 다시 이렇게 봄을 맞이하고 보니...
"돌아와 세상을 보니 마치 꿈속의 일과 같구나(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라는 글귀가 실감난다.
역사는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훗날 곰곰히 짚어보니 다 이유가 있더라는 것이다.
역사뿐 아니라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나이 그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친정이 항구도시만 아니었더라면...
학창시절, 그 녀에게 내가 조금만 자존심을 죽이고 친절했더라면...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지는 꽃이 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보니/ 어찌 알랴, 물 가득한 골짜기에 봄이 왔음을
외로운 산 가득한 물의 깊디깊은 뜻을/ 저절로 지음(知音)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도다 --- 금오선사(金烏禪師/ 1896-1968)
영국사를 찾아가는 꽃길을 구비구비 돌다보면 봄꽃이 전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지나간 슬픈 추억도...
스님의 귀하신 가르침도 모두 화사한 꽃비속에서 녹아 흘러 떠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