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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C'est si bon)

Led Zepplin 2015. 2. 18. 22:18

 

 

  60/ 70년대의 사랑과 음악을 극화한 영화 쎄시봉은 개봉이래로 초반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고공행진하여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후 경쟁작 조선명탐정2 킹스맨이 개봉하자마자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그 이유가 명탐정과 왕의 기세에 눌렸음일까..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일편 당연한 결과처럼 보여진다. 또한, 정작 영화를 무쟈게 좋아하며 쎄시봉의 직접세대인 나는 왜 그 영화를 보러가려고 마음먹지 않는가 그것은 또 영화의 추락과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핸드폰엔 여기저기에서 다운 받은 음악들이 내장되어 있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던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편리함으로 다운받은 곡들이며, 가곡에서 부터 클래식/ 발라드/ / 팝송까지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당연히, ‘쎄시봉의 노래들도 있다. 70년대 초반 무렵, 명동의 꽃다방 종로 2가의 여왕봉다방 광화문의 초원다방 경복궁 가는 길에 있던 설파다방이 그 시절 알아주는 음악다방이었으며, 을지로 입구에 태평양이 있었고 무교동에는 쎄시봉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자타가 인정하는 넓은 홀과 좋은 조명과 당시로써 첨단의 음향설비를 갖추고 있었던 거다.

 

나에게 있어 그 시절은 춥고도 가난했다. 바다를 항해하며 세상을 떠돌다 29살의 어느 날 문득 물에 빠져 죽겠다고 결심했던 나에게, 미래는 어두웠으며 삶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비참했으며 일상은 무기력했다. 살아있으므로 존재할 뿐인 처참한 동물에 불과했고, 미래를 그려보지만 그것은 올 것 같지도 않은 머나 먼 일들로 그려본다는 것 자체도 그저 생경할 따름이었다윤택한 미래를 말하는 교수는 있었지만 진실한 자유와 정의를 이야기하기는 꺼려했으며, 유신과 일당독재/ 전후의 가난으로 생존은 대체로 고단했다. 학생이므로 학교엘 갈 뿐 학업의 댓가로 유쾌한 내일이 온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으며, 암울한 현재 그 속에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오직 술과 하드락(Hard Rock)만이 유일한 삶의 존재 이유였다.

 

영화 <쎄시봉>60/ 70년대를 추억은 하되, 오마주를 바치거나 향수에 함몰되는 영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과연 그 음악들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청년문화가 대결하고자 했던 시대의 억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당사자들의 억압을 진지하게 사유하여 폭압적이었던 외부의 벽 그들의 모습을 현장감있게 드러내 보이고 당시 청년들의 내면에 새겨져있는 깊은 상흔을 정확하게 응시하면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는지에 대하여 미디어의 홍보와 포스터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어설픈 감상의 터치로 말미암아 그나마의 남에게 함부로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의 귀한 추억도 퇴색될까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쎄시봉>은 그 세대의 문화가 왜 더 저항적인 반문화로 나아가지 못하였는지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접근했어야 한다. ‘쎄시봉세대는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나 대단한 교육열과 미국대중문화의 수혜(?) 또는 잘못된(!) 교육를 받은 첫번째 세대로서 당시 최초로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청년문화의 폭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박정희도당들로부터 국가적인 폭압을 겪으면서 그들 중 소수의 피해자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가담자와 방관자로 내면화하는 어처구니없는 과정이 발생했다.

 

이런 현실을 통하여 당대의 많은 청춘들이 죄의식 내지는 자괴감과 비틀린 자의식을 안고 산업의 역군이라는 이름으로 체제 안으로 급속히 흡수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겪어야만 했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산업의 역군'으로 탈피 또는 변태 이후에 전혀 다른 배부른 성충이 되어 지난 날을 잊었다또 다른 이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오히려 김일성교의 맹신도가 되어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버둥버리고 있음도 이 자리를 통하여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 또한 쎄시봉세대가 겪어야만 하는 시대의 숙명이자 아픔이다. 오히려, 그 아픔과 어처구니없는 슬픔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음악을 들으면서 그저 감각적인 달달한 향수에만 빠져있는 부유한 중산층 주부들과 아자씨들이 가득한 이 현실이 웃프다. ‘쎄시봉(C'est si bon)’대단히 좋다는 의미인데, 과연 그 노래에 젖어들었던 우리들은 어떠했으며 어떠한가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고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