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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2049」

Led Zepplin 2017. 10. 19. 01:10



  빌어먹을.. 「스티븐 스필버그」의 히트작 〈E.T.〉와의 동시 개봉만 피했더라면, 1982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는 비록 시대를 쪼매 앞선 감은 있었지만 그 골 복잡한 세계관과 헷갈리는 미스터리들이 가득하여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SF영화의 신기원을 연 확실한 수작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1960년대 중후반에 바라 본 서기 2019년.. 세상은 이미 모두 기계화되었으며 인간의 본질인 감정마저도 기계적 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의 삶은 정교한 기계장치들에 의존적이며 사람들은 기분 전환용 장치를 이용하여 컨디션조차 제어하며 생활한다. 한편,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우수한 지적 능력과 신체적 능력을 겸비한 「리플리컨트」라고 명명된 복제인간들이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게다가, 놀랍게도 살아있는 동물은 희귀한 존재이며.. 생명체인 동물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커다란 희망사항이지만 그것은 부자에게만 가능할 뿐이다. 일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 난 복제인간들을 추적하여 사냥하는 일 따위도 값비싼 생명체인 동물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버는 직업적 행위일 뿐이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 난 복제인간들을 추적하여 체포 또는 사살하는 경찰의 임무가 부여된 인간 또는 복제인간을 「블레이드 러너」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과 동일한 인간적 감정을 갖고 있는 복제인간과 자신의 감정조차도 기계장치에 의존해야만 하는 인간.. 그 둘 중 누가 더 인간적일까. 완벽할 만큼 구비된 기계화된 사회에서 인류가 꿈꾸는 인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필립 K 딕(1928~1982)」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1968년 작》는 완벽하게 기계화되어 만나게 될 미래 사회의 음울한 묵시록을 통하여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과 로봇의 경계에 대하여 준엄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 제시된 설정과 세계관 그리고 메카니즘은 얼핏 골 복잡하고 헷갈리지만 대단히 치밀한 과학적 사실의 토대에 기본이 매치되어 있다. 조금 시기적으로는 이른 감은 있지만, 미래의 사회가 이러할 것이라는 짐작으로 단순하게 상상하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시대와 사회의 구조 그리고 과학적 근거와 그 흐름을 철저하게 염두에 두고 미래의 모습을 예견한 것이라는 거다.

 

영화마니아들이 선정한 SF영화의 원작자인 「필립 K. 딕」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광기의 SF작가로 평가받으며, 불우한 유년시절과 늘상 질병과 안전강박증에 시달렸고 결혼과 이혼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반전 운동가였으며 국가 권력/ 대기업/ 할리우드를 적대시 하였고, 장편과 중/ 단편 소설을 끊임없이 왕성하게 발표하였지만 늘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평가를 받기 시작할 만큼 그의 문학적 인생은 녹녹치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상상력과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여타의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영화와 문학은 20세기 후반의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한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넥스트/ 컨트롤러〉 등은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걸작들이다.

 

비 또는 폭우 그리고 우중충한 스모그가 일상인 폐허처럼 변모한 지구라는 별에 살아남은 인간과 복제된 인간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미래의 시간 2049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경찰의 임무를 수행 도중 30년 전 사망한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면서 출산의 흔적까지 찾아내게 되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리플리컨트」가 출산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되므로 이를 덮으려는 경찰 조직과, 그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 더욱 완벽한 「리플리컨트」를 만들어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K’를 쫓는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리플리컨트」의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수록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K’는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만나 상상하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된다.

 

인간 그리고 복제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생명체와 로봇의 경계, 영혼의 탐색까지 질문의 범주를 넓히면서 영화는 그 깊이를 파고든다. 템포는 조금 느리지만 그 호흡은 장중하며 철학적 상상력의 지평도 뛰어나고 스타일리쉬한 영화적 매력 또한 일품이다. 명작으로 꼽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컨택트>를 뛰어넘는 걸출한 감독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감정까지도 시각화한 이미지/ 품격이 있는 장중한 연출/ 중후함을 갖춘 미술/ 현학적 CG 등은 역시 출중하다.

 

SF계열의 클래식에 입선한 작품의 후속편으로서, 영화적 감흥이 다소는 그 흐름이 완만하여 느리고 입체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장면 장면이 SF답지 않은 기품과 정교한 미쟝센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편에 대비한 확장력과 함께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화두의 깊이까지도 갖춘 이 영화는 그래서 “과연, 「드니 빌뇌브」이다!” 라는 찬사가 튀어나오게 한다.

 

근래의 개봉작 〈덩케르크〉 이후 폭력적 상업영화에 식상한 수준 높은 영화마니아들에게, 현재의 권력에 편승한 부정적인 측면과 김상헌과 최명길 두 충신의 보다 치열한 논쟁을 보여줌으로써 오늘 이 시대에 국가와 민중이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 가를 심도 높게 설명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 〈남한산성〉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괜찮은 드라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