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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에서

Led Zepplin 2023. 9. 4. 01:07

 

                    (테르메 발스/ Terme Vals)
 
  날씨가 아직도 무덥고 한낮은 따가움이 전해지는 햇볕이지만, 높이 솟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적란운 뒤로는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싶다. 가을이 있어서 그렇게 지루한 여름도 견딜만한 것은 아닐까.
요 며칠 사이에 저녁에는 바람도 제법 선선하여 식후에 사부작사부작 산책을 나설만하다. 이제부터 그저 시간이 흘러가면서 가을이 다가오는 걸 피부로 느끼며 느긋하게 가을을 즐기면 될 일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이 있다. 옥돌을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서 빛나는 옥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성실을 뜻하는 용어이다. 냉난방이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이나 관리들의 용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구슬땀을 쏟으며 노심초사 진력하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라 하겠다.
살면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마음밭을 강하게 다잡는 좋은 방법은 마음을 가지지 않고 비우는 것일 것이다. 인간은 고난에 노출되어 있을 때 스스로 근본이 강해진다.
인간은 그가 ‘행하는 것’으로써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 내지만, ‘안 하는 것’ 즉 포기하거나 스스로 놓아버림으로 하여 다른 차원의 구원을 받게 된다.
 
지나간 여름, 우리는 상·하수도 설치/ 모기와 해충/ 어처구니없는 야영장은 물론 불결하거나 부족한 화장실과 샤워장 등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없는 잡초밭에서 ‘폭염 지옥’의 행사를 치뤄 새만금 엑소더스라며 세계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행사 이후에 책임론이 제기되자, 전북 지역 사회는 “대회 예산 집행권은 대부분 조직위에 있다.” “새만금 공항을 흔들려는 시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라며 흥분한다. 새만금 인프라 확충에 지장을 받을까 염려하여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은 우물 속에 갇힌 지역 정치의 양상에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전북 시장/ 군수 14명 가운데 11명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시 민주당은 광역/ 기초의원 지역구 의석 238석 중 86.13%(205명)를 차지하였으며, 국회의원도 10명 가운데 8명은 민주당/ 1명은 진보당이다.
영남은 물론이거니와 호남도 견제 세력이 없이 지내다 보니 당연히 문제가 생겨도 감각이 무뎌졌다. 이미 늦어도 한참을 늦었지만, 잼버리가 수렁에 빠진 전라북도에 새로운 시각의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잘 아는 〈007영화〉에도 등장했던 ‘융프라우’ 산/ ‘아이거’ 북벽이 있는 ‘스위스’의 ‘베른’ 주에 있는 도시 ‘그린델발트’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 알프스 중턱에 ‘발스 협곡’이라는 철도도 없는 숭악한 첩첩 산골이 있다.
예전부터 온천이 있기는 하였으나, 온천의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이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라는 건축가를 찾아내 기존 시설들 중심에 특별한 온천장 건물을 세워 새로운 리조트로 바꾸었다.
 
1996년 개장한 수용인원 140명의 이 온천은 연간 14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적 명소가 되었으며, ‘테르메 발스’는 그야말로 〈건축적 성지〉가 되었다.
비스듬한 경사 지형에 자리한 온천장은 절반이 지하에 묻혀 앞면만 드러난다. 건물 전면에 뚫린 개구부를 통해 험준한 바위산과 초원에 흩어진 산장들의 마을이 탁 트인 그림같이 펼쳐진다. 재료부터 풍경까지 지형과 건축이 일체가 되어 장관을 이룬다.
 
온천장 내부는 15개의 독립된 블록들이 여기저기 놓이고 그들 중심에 실내외 두 개의 대욕장이 위치한다. 온천장은 작은 도시와 같은 구성으로, 블록들이 건물이라면 대욕장은 도시의 광장이다. 블록들 사이의 천장에는 자연광을 내부로 확산시켰다.
내부의 벽들은 모두 편마암 적층이고, 온천수 증기에 천장 홈에서 퍼진 빛들이 어른거린다. 바위 속에서 온천수가 솟는 태고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종교적 공간에 가까운 온천 체험은 곧 세례와 치유의 곧 힐링의 경험이 된다는 거다. ‘스위스’ 산골 태생의 건축가 ‘춤토르’는 고향과 그 인근 지역에 소수의 소규모 건축만 남겼으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가라는 거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가 독일의 민중시 시집 중 몇 수를 작곡하여 만든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는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성 안토니우스’》라는 노래가 있다. ‘성 안토니우스’라는 신부가 교회에 설교하러 갔으나 사람이 없어 물고기에게 설교한다는 내용이다.
‘성 안토니우스’가 설교를 하자, 잉어/ 대구/ 뱀장어/ 철갑상어/ 거북이가 몰려들었다. 물고기들은 신부의 설교에 감동하며 지금까지 이렇게 훌륭한 설교를 들은 적이 없다고 호들갑을 떨며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설교가 끝난 후 물고기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뱀장어는 늘상 암컷을 탐했으며 대구는 항상 탐욕스럽다. 잉어 역시 게걸스럽게 먹고 다녔다. “그들은 설교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설교가 그들을 잠시 즐겁게 하였으나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노래는 이런 가사로 끝난다.
‘성 안토니우스’가 설교할 때, 그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한 것 같았지만 설교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들이 바로 인간이다.
연주회마다 한여름 낮의 소나기 같은 박수가 이어지는 커튼콜이 울리는 멋진 작품이지만, 팀파니로 시작하여 여러 타악기/ 목관악기/ 현악기로 이어지는 소란스럽게 수다스러운 선율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