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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추억

추억은 아무래도 기억과는 좀 다르다. 우리들의 추억이라는 단어에는 막연하나마 슬며시 저며오는 아픔이라든지 아스라한 미련이랄까 까닭 모를 애틋함이랄지 아무튼 그런 어떤 서정이 있다. 추억이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와 사랑했었던 기억/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기억/ 재수를 결심하면서 맥 빠지고 쓸쓸했던 기억/ 사회에 진출하기 위하여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시험에서 탈락했던 순간의 암담한 기억/ 처음 입사한 회사의 두렵지만 새 출발로 설레었던 기억들이 있지만, 역시 아무래도 그 누군가 때문에 혼자 아파하며 무작정 걸었던 그때의 풍경과 그 순간들의 기분 등이 문득 어느 순간에 또는 아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 떠오르는 바로 그것이 추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비가 주룩주룩 또는 소리도 없이 내리면 추억의 ..

카테고리 없음 2023.07.20

연꽃을 스치는 바람처럼

젊어서부터 ‘연꽃’은 남다른 꽃이었다. ‘연꽃’은 많은 꽃 중의 하나로 보기에는 단순하지 않은 꽃이었으며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정겹고 아름답게 보인다. 한 시절 욕망의 시선으로는 ‘연꽃’만의 고즈넉한 연분홍 품격은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오랫동안 부질없이 헤매다 먼 길을 돌아와 이제 삶을 되돌아볼 나이가 되니 여름의 열기 속에서 누구에게도 내세우지 않는 그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연꽃’의 품격과 미모를 다시금 보게 된다. ‘연꽃’의 미모와 품격을 처음 느껴본 곳은 아무래도 〈부여〉의 〈궁남지(宮南池)〉일 것이다. 오래전 〈궁남지〉는 관광명소가 아닌 그저 평범한 시골의 큰 연못이었다. 다만, 못 한가운데에 왠 정자가 문득 있었을 뿐이었다. 못 한 가운데 〈포룡정〉이라는 정자와 정자까지 연결되는 아..

카테고리 없음 2023.07.14

달콤한 인생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단 한 조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대여섯 살이던가 외삼촌에게 손목을 잡혀 외할머니 집에 왔다. 식구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에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음식을 흘렸을 때이거나 맛난 반찬을 먹을 때에는 어른들로부터 따가운 눈총과 질책은 있었다. 학교의 공부는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부모와 함께 손을 잡고 걷는 아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혼자 세상을 원망하였으며 초등학교 졸업을 겨우 마친 이듬해 이던가 서울에 왔다. 번화가의 큰 이발소에서 심부름을 했다. 구두도 닦았다. 구경도 못 해 본 돈이 날마다 생겼다. 난생처음 음식을 양껏 먹어봤으며 먹고 싶은 음식과 옷을 마음대로 사 입었다. 같은 업종의 친구들과 세상 무서울 ..

카테고리 없음 2023.06.29

랩소디(Rhapsody)

인간의 기억은 오류가 그 장점이며 시간을 가로지르는 다리와도 같은 것이다. ‘성훈’은 다재다능하고 머리도 명석한 친구였으며, SKY는 아니지만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전통 있는 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하였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으나 나름의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문장력/ 날카로운 직관 등으로 다른 기자들보다 지상에 기사를 훨씬 더 많이 올리게 되었다. 자연스레 ‘성훈’은 입사 초부터 사내에서 동기 중에서 눈에 띄게 되었으며, 신문 지상에 오르던 이름 석 자는 차츰 독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던 거다. 나는 그보다 입사 3년의 선배이지만, 그는 나보다 더 주목받는 후배 기자였다. 그는 업계의 주목받는 기자로서 똑똑하고 침착하였으며 친절한 미소 덕분에 사내 주변에 적이 없는 편이라고 봐도 된다. 시간..

카테고리 없음 2023.04.12

눈 내리는 밤 그리움의 이름으로

눈 내리는 들판을 걸었어. 혼자 걸었지. 끝없는 들판은 눈보라도 세찬데 한사코 바람 오는 쪽으로만 걸었어. 눈물도 흐르고 콧물도 흐르더라고. 오늘도 그날처럼 눈이 내리는데 하염없이 걸었던 그 날들의 들판이 마냥 꿈결인 듯싶네. 어제부터 내린 눈은 밤새 내리고도 멈출 줄을 모르고 지금도 내립니다. 이런 저녁나절, 아직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독한 사람일까요. 월수 70만 원을 움켜쥐고 퇴근하던 오래전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 올라가는 골목길의 눈발은 삶의 무게만큼 힘겹도록 구부정한 내 어깨 위로 쌓였습니다. 골목길 모서리의 포장마차에 들러 빈속에 소주 한 병을 들이붓고 담배에 불을 붙이면 담배 연기는 찬바람에 흩어지며 뿌옇게 번져나가고 문득 사는 게 막막하고 ..

카테고리 없음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