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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추억

겨울이 끝나가는 무렵, 어중간한 기온으로 인하여 입맛이 사라진 이즈음 외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따끈한 칼국수가 생각난다. 밀가루에 날콩가루를 대충 섞어 반죽하여 홍두깨로 민 다음 착착 접어 가늘게 쫑쫑 썰고 멸치국물에 듬성듬성 썬 감자를 넣고 한 번 끓인 후 송송 썬 애호박을 우르르 넣어 한소끔 끓이면 구수한 손칼국수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삭힌 매운 고추를 썰어 넣은 양념장을 듬뿍 얹어 뜨끈하게 먹고 뒤로 물러나 앉으면 천하의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았던 거다.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건강진단의 결과로 매년 의사선생이 밀가루 음식과 술은 피하라고 눈에 힘을 줘가며 강권 하지만, 술과 국수를 뺀다면 나의 인생은 얼마나 무료하겠나. 술로 만취한 새벽녘 잠에서 깨어 밤에만 문을 여는 단골 국수집을 찾아가 구수하..

카테고리 없음 2022.03.02

고래를 위한 꿈

오후 5시... TV로 유튜브에서 지나간 우리 시대의 전설 그룹사운드 ‘Eagles’의 녹화 공연을 보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한가로운 시간입니다. 밖은 지난 세기 천년동안 우리를 괴롭힌 잘난 이웃 중국 덕분(?)으로 미세먼지가 자욱하여 마치 안개가 낀 것만 같은 착각 때문에 더욱 젖어드는 추억 돋는 시간입니다. 그 안개 속으로 'take it to the limit'/ 'lyin' eyes'가 흐릅니다. 그 시절의 그 날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추억을 음미하는 이 순간만은, 늙어 간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도 듭니다. 돌아보면, 70년대의 그 시절들은 비가 오고 안개로 뿌연 하늘로 춥고 신산했던 날이 더 많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삶도 이정표를 잃고 무기력했습니다. ..

카테고리 없음 2022.02.16

눈 내리는 간이역에서

친구여, 눈이 오시는 날은 배낭을 챙겨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문득 떠나자. 더러는 바람이 불고 첫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어도 좋겠다. 그리고, 이름 없는 어느 간이역(簡易驛)에 내려 눈발을 헤치고 산골 마을을 찾아가 보자.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보다는 그 단풍이 모두 져버린 초겨울이 나는 더 좋다. 늦은 가을 초겨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망실(亡失)의 우수(憂愁)가 나는 더 좋다. 망실의 우수가 수놓인 산하(山河)를 목적지 없이 천천히 떠돌다 만나는 저녁 석양노을이 좋으며 산허리를 굽이돌아 만나게 되는 산골마을의 시골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도 좋다. 그런 풍경을 만나면, 문득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도 못내 자태 고운..

카테고리 없음 2021.12.26

다시 한 해를 보내며

바닷가 떠내려 온 난파선 하나 아스라한 그리움마저 잃어버리고 그 난파선에 갇힌 늙은 낙타 날개 부러진 갈매기마냥 파닥거리다 목 놓아 울다 부딪는 파도에 그 설움도 모두 보내고 속 텅 빈 소라껍데기 목 쉰 바람 소리만 애절하다 마침내 도착했던 머나 먼 바다 고래를 잡을 것만 같아 고래가 왈칵 반겨줄 것만 같았던 난파선 된 무모한 도전의 파편 조각들 다시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이 저녁 퍼붓는 굵은 눈발 속으로 부러진 추억 속 상처 도져오니 깨진 거울 속 멍들고 타버린 붉은 얼굴 지금 이 시간처럼 수백 번의 자정이 지나가고 이제 달랑 십여 차례의 자정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렇고 그랬던 한해는 이렇게 다시 저물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사연으로 가득한 장편소설처럼 한장 한장 시간의..

카테고리 없음 2021.12.19

네가 왕이 될 상이냐

나는 젊어서부터 영화광인지라, 있는 건 시간뿐 백수인 요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빠져 지낸다. 재작년이던가, 넷플릭스에서만 개봉한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다룬 《두 교황》과 내가 무쟈게 좋아하는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 그리고 금세기 최고의 연기파인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아이리시맨》을 볼 요량으로 ‘넷플릭스’에 가입하여 두 영화를 아주 맛깔나게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둘러보아도 보고픈 영화가 별로 없는 2류영화 일색이며 일도 바빴는지라 회원탈퇴를 하였는데 근래에 세계 최고의 화질이라며 유럽에서까지 호평인 고가의 와이드 대형 TV를 구입하여 이미 보았던 영화와 미드까지도 다시 보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 과연, 요즘 4K의..

카테고리 없음 202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