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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풍경

두어 번의 태풍이 지나가더니 문득 가을이 왔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제법 선선합니다. 모질던 무더위와 바람도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습니다. 지나고 나면 이렇듯 별 것이 아닌 것들을... 모든 물질들에 대한 욕망/ 출세 그리고 삶의 전부일 것만 같았던 사랑 또한 세월의 바람결에 허무할 만큼 가벼이 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드높은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한가로운 오전 나절, FM에서는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3번’이 조용히 흐르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먼 풍경에 눈을 주고 있습니다. 더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 눈앞에 다만 풍경이 있을 뿐이며, 귀로는 편안한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을 따름입니..

카테고리 없음 2022.09.29

나는 자유다

《페스트》와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가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상을 받았어야만 한다.”고 토로한 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으로 이야기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Den elpizo tipota).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Den forumai tipota). 나는 자유다(Eimai eleftheros).’라는 말처럼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단지, 남아있는 삶 동안이라도 말입니다. 학창시절 고독과 슬픔에 얹어 배까지 곯고 살았으며 학업을 끝내고 바다와 숱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과는 너무도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다를 떠나 육상에 살면서도 옳고 그름이 사람 주관마다 다르며 깃발 잡고 앞장서서 내달려도 진실..

카테고리 없음 2022.09.07

낙타의 울음에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형과의 마찰로 인한 불편한 생활로 부터 헤어진 어머니의 나머지 삶은 그리 썩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형과 함께 살면서 부대낀 살림살이의 끊임없는 노동과 구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작은 해방감은 있어 보였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은 아들과 만나는 짧은 외출이면 어머니는 여타 노인네들보다 맵시 있는 옷차림으로 발걸음이 가벼우셨다. 어머니는 나이에 비하여 식성도 좋으셨으며 안색도 밝고 맑으며 건강하셨다. 어머니와 작은 아들이자 막내와의 만남은 그렇게 두어 달에 한 번씩 이어져갔다. 어머니가 갑자기 다치셔서 전주의 성모병원으로 입원시켰다는 수녀님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내려가 만난 어머니는 “바쁜데 뭐 하러 내려왔느냐.”면서 우리 부부를 타박하셨지만, 내심으로는 좋아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건강하시..

카테고리 없음 2022.08.10

마바리들 대잔치

최초의 인간 ‘아담’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는데, 지나가던 악마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담’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굉장한 나무를 심고 있다.” 악마가 화답했다. “이건 처음보는 식물인데?” ‘아담’이 악마에게 설명하였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고 맛있는 열매가 맺히는데, 그 즙을 먹으면 굉장히 행복해 진단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악마는 자기도 동업자에 끼어달라면서 양과 사자 그리고 원숭이와 돼지의 피를 거름으로 부어주었다. 포도주는 이렇게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으로, 우리가 술을 마시면 처음엔 양처럼 순하게 더 마시면 사자처럼 조금 후엔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지나치면 토하고 뒹구는 돼지처럼 변화하는 것은 악마의 선물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악마가 바쁠 때는 인간에게 포도주를 대신 보낸다는..

카테고리 없음 2022.08.04

낙타는 멈추지 않는다

스폰지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어둠이 차분하게 내려앉으며 간간이 바람소리와 함께 후드득 거리며 내리던 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로 거친 바람과 함께 폭우로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세차게 창을 두드렸다. 한 밤 열두시를 넘긴 지금 장마 비는, 더러는 속삭이는 비단결 스치는 소리처럼 때로는 유리창을 열고 지난 시절에 당신이 함부로 내던진 거친 추억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따지듯이 세차게 내리치고 있다. 그렇게 추궁하는 빗발 속으로 초대하지 않은 지난 시절의 추억들이 저벅거리며 찾아든다. 지난 시절, 중학 2학년의 나이에 아버지의 주검으로 문득 만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머뭇거리며 구하기도 전에 연속적으로 이어진 진학과 학업/ 사회의 진출과 적응/ 해외로 떠도는 자에게 주어진 매..

카테고리 없음 2022.07.12